서양 현대의 교육
보르노(O. F. Bollnow, 1903-1991)
볼르 노(O. F. Boll now, 1903-1991)는 한국에도 두 차례나 방문한 적이 있는 현대 독일의 대표적인 교육학자이며 철학자이다. 그의 관심 분야는 삶의 철학, 현상학, 실존철학, 철학적 인간학, 해석학 등 매우 다양하다. 현대 독일 교육철학의 한 주류인 "정신과학적 교육학"의 흐름 안에서 확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그는, 특히 실존 철학적 교육이론을 정립하였으며, 교육학의 인간학적 고찰 방법을 제시하였다.
- 교육학의 학문적 성격
일반적으로 학문은 대상 영역을 통하여 규정된다. 그러나 볼 르노는 교육학은 다른 학문처럼 대상 영역을 통하여 규정될 수 없다고 보았다. 교육학은 대상 영역이 너무나 포괄적이기 때문에 하나의 대상 영역으로 한정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볼 르노는 교육학을 대상 영역 학문적인 방법론으로부터 규정했다. 그에 따라 볼 르노 교육사상은 교육 현상에 대한 해석과 고찰 방법 등에 집중되었다. 볼 르노는 교육 현상을 포괄적으로 관찰하고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철학적인 이해를 통하여 얻고자 하였다. 볼 르노는 철학자이며 교육학자로서, 교육학과 철학을 분리하지 않고 하나의 통일된 학문으로 보았다. 볼 르노는 교육학이 철학의 품을 떠나 심리학과 짝하면서 과학화의 길을 걸었고 또한 사회학의 손을 잡고 사회화를 주장했으나, 이제 교육학은 다시 철학과의 상호관계 속에서 길을 걸어가야 한다고 보았다. 이는 볼 르노의 철학이 어떤 초월적인 가정이나 원리를 배제하고 인간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을 맺고 있는 실천적인 학문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좀 더 근본적으로는 볼 르노에게 철학적 인식은 직접적으로 교육학적인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리하여 볼 르노는 교육학의 여러 문제에 대한 삶의 철학적인 이해로부터 출발하여 실존 철학적 입장에서 교육의 새로운 형식들에 대한 해명을 시도하였으며, 교육 문제들을 해석학적 인간학적인 차원에서 폭넓게 이해하였다. 결국 볼 르노에게 있어서 교육학이란 교육 현상에 대한 철학적 해면이다.
- 실존철학적 교육이론: 단속적 교육이론
볼 르노는 자신의 저서 《실존철학과 교육학》에서 실존철학의 기본사상이 교육 현상에 대한 이해를 얼마나 심화시켜 주는가를 철저하게 고찰하였다. 그에 의하면 이제까지 교육의 역사에서 교육이 이루어지는 과정에 대해서 두 가지 이해가 지배적이었다. 하나는 인간의 성장을 식물의 성장과 같은 것으로 보고 교육을 정원사가 나무를 재배하는 것에 비유하는 "기르는 교육"이고, 다른 하나는 인간을 재료나 물질과 같은 것으로 보고 교육을 목수가 무엇을 만드는 행위에 비유하는 "만드는 교육"이다. 그런데 이 두 이해는 인간의 "지속적인 형성 가능성"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볼 르노는 실존철학이 종래 두 가지 교육 이해의 전제, 즉 "지속적인 형성 가능성"을 부인한다는 점에 착안하였다. 실존철학의 "실존"이라는 개념이 모든 지속적인 형성을 근본적으로 거부하기 때문이다. 볼 르노는 실존철학의 교육학적 의미를 고찰하면서 두 가지 교육 이해와는 다른 제3의 교육 이해의 길을 제시하였다. 볼 르노는 종래의 두 가지 교육이론은 항구적·지속적인 것에 근거한다고 하여 "지속적 교육이론"이라 하였으며, 이에 대하여 실존철학의 인간 이해로부터 성립된 교육이론은 단속적인 것에 근거한다고 하여 "단속적 교육이론"이라고 불렀다. 단속적 교육이론에 의하여 종래 지속적 교육이론에서는 등한시되었던 인간 실존의 많은 현상, 특히 인간 속에 잠자는 가능성을 깨우치는 일들이 교육학적인 근본개념으로서의 성질을 지니게 되었다.
볼 르노는 실존 철학적 교육학이 주는 가능성의 지평이 얼마나 풍부한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를 몇 가지 예를 들어서 설명해 주었다. 볼 르노는 인간 실존의 교육학적 범주로서 위기, 각성, 충고, 상담, 만남, 모험, 난파 등을 제시하고 실존 교육학적 입장에서 분석하였다. 이러한 여러 실존적 범주 형식들 가운데 볼 르노에게 가장 핵심적인 개념은 "만남"이다. 만남의 개념에서 결정적인 것은 우연성이다. 따라서 교사는 만남을 의식적으로 조정할 수 없으며, 다만 교육에 만남을 끌어들이기 위하여 만남의 전제를 창조할 수 있을 뿐이다. 볼 르노에게도 만남은 부보(M. Buber)에서처럼 주어지는 하나의 선물이며 은총이다.
결국 볼 르노는 실존철학에 대한 교육적 의미를 고찰함으로써 종래 교육영역에서 관심을 갖지 않았던 비연속적인 형성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형식들을 새롭게 발견하였으며, 그리하여 지속적인 형성만을 중시한 전통적 교육학을 극복하고 교육학의 영역을 확대했다고 볼 수 있다.
- 교육학에서 인간학적 고찰방법
교육 인간학(Padagoaische Anthropologie)은 독일의 특수한 교육철학으로서, 1920년대에 판매자와 플레스너를 중심으로 일어난 철학적 인간학의 인간 이해와 방법론을 바탕으로 인간의 본질을 교육학적 관점으로 해석하려고 한 모든 노력을 묶어서 부르는 말이다. 교육 인간학 안에는 여러 입장과 이해들이 있다. 볼 르노는 그 가운데 "교육학의 고찰 방법으로서의 교육 인간학"의 입장을 대표하고 있다.
"교육학의 고찰 방법으로서의 교육 인간학"은 철학적 인간학의 방법론적 원리를 교육학에 적용한 것을 말한다. 여기서 적용은 철학적인 가학적 성과를 추후 적으로 교육학에다 적용하고 교육학을 위해서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 인간학의 문제설정 방식을 직접 교육에다 채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체 교육학을 이끌어가는 하나의 관찰 방법이 문제이다.
볼 르노는 이 인간학적 고찰 방법을 개별적인 교육 현상에 적용하여 고찰하였다. 교육학에서도 근본원리는 철학적 인간학에서와 마찬가지이다. 즉 개별적인 교육 현상이 인간 전체의 본질과 필연적으로 결부되어 인식되면 그 사실은 특수 사실의 우연성으로부터 근본적으로 철학적, 인간학적인 차원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볼 르노는 몇 가지 예를 들어서 교육학에서 인간 학적 고찰 방법의 유호성을 보여 주었다. 인간학적 문제설정을 통하여 아동이 느끼는 "안정감"과 "신뢰성"이 교육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전제조건임을 밝혀 주었으며 "거주하는 집", "언어", "시간" 등에 대해서 철학적 인간학적 고찰을 통하여 교육적 과제를 제시하였다. 볼 르노는 이러한 교육이 어떠한 종류의 교육인가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다루지 않았다. 그러한 교육의 방향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 교육사적 의미
볼 르노는 철학과 깊은 연관성 속에서 자신의 교육이론을 전개했다. 특히 볼 르노는 실존철학에 대한 교육적 의미를 고찰함으로써, 비연속적인 형성을 가능하게 하는 교육형식들을 새롭게 발견하여 교육학의 영역을 확대했다. 또한 볼 르노는 철학적 인간학의 인간 이해 방법론을 교육학에 적용하는 인간이 지닌 교육학적인 의미를 보여 주었다. 이러한 볼 르노의 교육학은 정신과학적 입장에서 교육학을 일정하고 특수하게 정립해 왔던 딜타이, 슈프랑거, 미시, 나올, 폴리 터 등으로 이어지는 "정신과학적 교육학"의 흐름 안에서 확고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