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현상의 철학적 이해
교사란 누구인가? "교사"라고 하였을 때, 우리에게 이미지는 어떤 모습인가? 일반적으로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으로 이해되고 있다. 학생들에게 지식을 전수하고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사람이다. 특별히 입시 중심 교육이 이루어지는 우리 사회에서는 교사의 역할 가운데 지식의 전달이 가장 중요한 역할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교사를 단지 지식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기술자로 이해한다면 그것은 교사직의 특성을 축소하고 왜곡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교사는 분명 가르치는 것을 일차적인 과제로 삼고 있는 사람이나 교사는 '가르치는 사람 이상'이다.
교사는 그 직업적 특성상 어른 세계와 어린이 세계 두 세계에 살고 있는 존재이다. 어른으로서 교사는 학생들에게 기성세대가 쌓아놓은 지식을 전달하고, 기성세대의 가치관, 삶의 태도 등을 알게 하는 역할을 한다. 동시에 교사는 어린이 세계에 존재하는 인물로 어린이의 삶을 인도하고 그들의 권익을 대변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교사의 이러한 성격 규명에서 교사의 본질적 과제는 두 가지로 드러난다.
첫째로 교사는 어린이들을 기성세대의 세계로 이끌어 들여야 할 과제를 안고 있다. 기성세대의 가치관을 전수하여 기성세대가 만들어 놓은 세대에서 잘 적응하며 살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둘째로 교사는 성장 세대의 책임자로서 어린이를 돕고 그들의 권익을 대변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위 두 가지 과제는 교사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 책임이요 의무이다. 이 두 가지 과제가 조화롭게 수행될 때 교사는 학생들을 하나의 인격으로 키우는 인간 교육의 책임을 성실히 감당하게 된다.
교사에게는 이러한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몇 가지 권한과 책임이 부여된다. 첫째, 자유와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교사는 교육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행해지는 교육행위와 수업행위에서 일정한 범위 내에서 자유를 보장받는다. 특별히 수업 내용과 수업 방법의 선정에서 자율성을 보장받는다. 교육 실천에서 자유와 자율성은 한편으로 교사의 책임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부여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교육자로서 교사의 양식을 신뢰하기 때문에 부여된다. 그러나 교사의 교육적 자유는 오용되거나 남용되어서는 안 된다. 자신의 자의적인 판단에 의존해 교육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 교사의 자유롭고 자율적인 교육 행위에는 언제나 교육적 책임이 동반되어야 한다.
둘째, 권위가 부여된다. 일반적으로 권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권위를 행사하는 사람과 그 권위에 복종하는 사람 그리고 권위의 내용인 규범 또는 가치가 있어야 한다. 교육에서도 권위는 행사자인 교사와, 복종 자인 학생, 그리고 권위의 내용이 있게 된다. 그렇다면 교사에게 왜 권위가 필요한가? 교사가 권위를 행사하는 것은 단지 윗사람으로서의 위치를 확인시키기 위한 것은 아니다. 잘못된 권위의 행사가 좀 더 발전하면 주종관계가 형성되어 교사가 주인이고 학생은 마치 노예처럼 되는 경우가 있다. 엄밀히 말해서 이것은 줜위의 남용이다. 유교문화가 지배했던 우리 사회에서는 교사의 권위가 위와 같이 받아들여지는 경우가 많다.
권위를 이처럼 잘못 이해하게 된 첫 번째 원인은 권위가 항상 교육적 관계 안에서 성립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데서 기인한다. 교사의 권위는 교사-학생 사이에서 무조건 성립하는 것이 아니고, 교육 내용을 바탕으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키우는 목적으로 교육이 수행될 때, 즉 교육적 의미가 부여될 때 비로소 성립하는 것이다. 또 다른 원인은 권위가 갖고 있는 근본적인 의미를 잘못 이해한 데서 오는 것이다. 교사의 권위는 학생에 대한 도덕적 책임에서 기인한다. 즉 학생들을 도덕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기 위한 목적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따라서 권위는 권력이 아니라 책임이요 도움이다. 교사의 권위가 교육적 의미를 지닌 교육적 책임으로 행사될 때 학생들은 그것에 신뢰를 보내고 수용하게 된다. 학생들이 교사의 권위를 신뢰하고 수용하지 못하면 그것은 무용지물이요 폭력으로 변한다.
그렇다면 교육의 상황에서 권위는 꼭 필요한가? 만약 교육에서 권위가 없다면 어떻게 될까? 그곳에는 먼저 명령과 복종만이 있게 될 것이다. 그곳에서 학생들의 독자적이고 자립적인 정신과 삶의 태도를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역으로 학생들을 자유방임적으로 놓아두는 것 역시 무책임한 교육이 될 수 있고 교육 자체를 포기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권위 없는 교육은 불가능하다. 교사는 권위를 갖고 학생들을 교육해야 한다. 교사의 권위는 학생들에 대한 사랑과 책임으로부터 교사에게 부여된 것이다. 사랑과 책임이 동반되는 권위는 학생들의 신뢰를 얻게 된다. 학생들의 신뢰 없는 권위는 폭력과 다를 바 없다. 학생들은 그러한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통해 점차 자신 있고 독자적인 어른으로 성장하게 된다.
셋째, 교사는 자신의 교사직을 수행하는 데 있어 학생들에게 벌을 내릴 수 있다. 교사의 권위에 학생들이 따르지 않을 때 교사는 벌을 가하게 된다. 벌을 준다는 것은 곧 학생들의 고통과 관련이 있다. "학생들이 잘못했으니까 무조건 벌을 받아야 한다."는 논리는 단순하고 교육적으로 무의미하다. 벌과 관련된 핵심 문제는 고통의 의미에 잇다. 즉 학생들이 받는 고통이 어떤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것은 물론 교육적 의미이다. 벌은 학생들의 양심을 각성시키고 도덕의식을 일깨우는 도덕 교육적 기능을 담당할 때 비로소 그 의미가 있다. 즉 벌이 정당화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교육적인 의미를 지녀야 한다. 교육적인 의미를 지닐 때 비로소 학생들은 벌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벌은 잘못된 행위의 반성이라는 긍정적인 효과는 있지만, 학생들의 자기 신뢰와 자존감에 상처를 입히는 부정적인 효과도 있다. 벌을 자주 받게 되는 학생은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고 자신감을 상실하게 된다. 따라서 벌을 주는 데에서는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먼저, 학생들이 자신들이 저지른 잘못을 인식했을 때 벌을 가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학생들이 저지른 잘못을 인식했을 때 벌을 가해야 한다. 그렇지 못할 때 학생들은 고통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할 수 없고, 교육적 효과도 거두지 못하며 오히려 반발감만 형성하게 된다. 고통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해자는 벌은 매우 잔혹하다. 벌을 주는 사람은 학생들을 교육적으로 지도하겠다는 교육적 사랑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학생들이 사랑의 매를 느꼈을 때 학생들은 자신들이 받는 벌로 인한 고통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 타성에 젖어 습관적으로 벌을 주는 행위는 죄악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그것은 분명 폭력이다. 어쩔 수 없이 벌을 주더라도 그것이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치욕적이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의 존엄성과 도덕적 가치가 인정되는 범위에서 가해져야 한다. 오히려 벌이 학생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도덕적 가치를 깨우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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