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과 교육철학
이제까지 우리가 배우고 접해 왔던 교육철학은 철학이 특수한 집단의 사람들에 의해 다루어졌다고 생각되었던 것처럼 교육학의 특정한 분야에 속한 사람들의 전유물로 생각되었다. 그래서 교육학을 전공하거나 교직과목을 이수하는 학생들이 다양한 필수과목들 가운데 하나로 교육철학을 배워야만 하는 것으로 여겼다. 그리고 교육철학 강의의 내용이란 대체로 고대 시대부터 지금까지 전승되어 내려온 교육에 대한 철학자들의 언급을 정리하여 분석한 것이었다. 어떻게 보면 그들 자신은 전혀 교육학자 또는 교육철학자라고 하지 않았을 사람들의 말과 글을 특정한 관심에서 끌고 정리하여 교육철학이란 이름의 분과학문을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대부분의 사람이 교육의 목적과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교육철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교육철학은 사상사적 고찰에 근거하여 현시대와 상황에 따른 교육목적과 목표를 설정하는 일로 자신의 임무를 다하였다고 본다. 그런 다음에 중요한 것은 정해진 목적과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가르치는 일이며, 교육학이 전념해야 할 부분은 바로 가르치는 방법에 관한 내용이라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중요한 것은 교육 방법이고 교육철학은 자연히 옛 내용과 대상을 다루는 따분하고 어려운 과목이라는 인식이 저절로 형성된다. 또한 전공자들이 노력하여 교육의 목적을 잘 제시하면 될 일이기 때문에 교육에 관계하는 사람 모두가 교육철학에 관계할 필요가 없다는 논리도 나올 수 있다. 교육학자와 교사에게 가장 중요하고 필수적인 과업은 가르치는 방법을 개발하고 습득하는 일 이하라는 것이다.
교육철학을 이처럼 이해하는 현대의 교육학은 사실 적지 않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도구적 사고의 지배를 받다 보니 무엇이 실질적인 차원에서 필요한지를 조사하여 교육의 목표를 정하면, 그다음에는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의 개발과 실험에만 열중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가르쳐야 할 내용이 과연 교육의 의미 전반에 비추어 타당한 것인지, 혹은 인간의 존엄성을 전제로 하여 교육 방법을 개발하고 있는지에 대한 본질적 질문은 대체로 잊히거나 부수적인 문제로 전락하기 일쑤이다. 교육철학은 자연히 교육과정, 교육 사회, 교육행정, 교육공학 등등의 각 분야처럼 교육의 이념적 체계에 관심을 지닌 전문가들만의 특수한 영역으로 축소되고, 교육철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자연히 전문지식으로서의 교육철학을 배워야 한다. 그러다 보면 그들은 자기 삶과 분리된 막연한 사고의 체계나 추상적 이론의 세계에 들어가는 듯한 착각을 할 수 있고 거부감마저 느끼게 된다.
그러나 교육에 대한 철학을 "교육의 문제 전반에 걸쳐 그 본질과 의미를 새롭게 찾으려는 노력"이라고 할 경우, 우리들 대부분이 지닌 기존이 생각은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것이다. 교육이 단지 특정한 지식과 기능의 전수가 아니라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이끄는 전인적 자기도야(自己陶冶)의 과정으로 이해된다면, 교육학의 어느 분야를 전공하는 사람에게도 교육철학은 핵심적 부분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고 또한 인식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흔히 전문화와 세분화가 좀 더 진보된 인식을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빠져 있다. 이제까지 과학이 발전해 온 과정을 보면 그러한 생각은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하지만 물리적 존재물이 아닌 인간은 통합적인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하며 정신적 유기체로 이해되어야 한다.
물론 인간의 생물학적 측면은 자연과학적 연구 방법에 의해 효과적으로 연구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그와 동시에 사회적, 정신적 그리고 인격적인 존재로도 이해되어야 한다. 문제는 각 부분에서 연구된 결과를 단순히 합한 것이 인간이나 인간의 교육이 될 수 없다는 점에 있다. 우리가 흔히 착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교육학의 각 분야를 하나씩 분리해 충실히 배우는 나중에 교육학의 체계와 안목이 생길 수 있을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이다. 각각 분리된 영역에서는 연구의 진보를 이룰 수 있을지 모르나, 전인적 인간과 그의 교육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런 연구가 인간 교육의 궁극적 관심과는 상치되는 결과를 유발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현대의 새로운 학습 방법들은 학습 그 자체만을 놓고 본다면 효율적일는지 모르나, 자유로운 인격으로서의 인간에게 과연 합당한 방법이 될 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인간은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존재로만 만들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이 사회적 존재임은 틀림없으나 그렇다고 해서 사회의 요구에 따르는 수동적 능력과 자세만을 지닌 것은 아니다. 인간은 생물학적이거나 사회적 필연성에도 불구하고 고유한 자의식을 지닌 자유로운 인격체이다. 그는 자신이 처한 외부적 상황에서 고유한 내면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는 존재일 때에만 간다. 운 삶을 영위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인간은 자기 자신을 형성하기 위해 어떻게 교육을 사유할 때 비로소 인간 교육의 총체적 차원을 보게 되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자신의 분야에서 의미 있는 연구를 지속할 수 있다. 왜냐하면 교육이란 인간 변화를 위한 기술적 방법이 아니라 전인적 차원의 자기 변화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설명한 관점에서 보면 교육철학은 교육의 보편적이고 궁극적 문제에 대하여 생각하고 관점을 찾아내는 자유로운 인간 정신과 관계하는 분야이다. 그래서 특별히 교육철학을 전공하는 전문가가 있을 수도 있으나, 이미 그 이전에 "교육에 관계하는 모든 사람이 지녀야 할 자유로운 정신이며 태도"이기도 한 것이 교육철학이다. 교육학을 배워 교사가 되려는 사람에게 있어서 교육철학은 이제 더 이상 재미없고 어려운 특수분야이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인간과 교육에 있어 아주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그 본질과 의미에 대해 자유롭게 사유하고 탐구하는 정신을 형성하는 과정이 바로 교육철학이다. 교육 철학적 태도가 형성된 사람들은 자신이 직면하는 교육 현실에 대해 "왜 그렇지?"라는 질문을 던지며 현상을 새롭게 인식하려 노력한다.
교육학을 배우는 학생들 역시 교육 현상을 설명하는 도식적 방법과 이론을 배우고 그것에 맞추어 현실을 설명하면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래서 각기 세부 분야에서 행정학이 곤, 심리학이 곤, 사회학이 곤, 경제학이 곤 들에 근거한 교육의 이론을 파악하고 배우려 애쓴다. 그러다 보니 교육학은 자신의 고유한 이론을 지니지 못한 이류 학문이라는 비판도 듣게 된다. 그러나 이런 식의 교육학 공부에서 더욱 심각한 문제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기존의 이론적 틀과 체계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자세가 형성된다는 것과, 그에 따라 독자적 흥미와 관점을 지니고 사물과 현상을 주시하는 태도를 상실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종종 교육학 이론의 대가가 한 말을 자신의 것처럼 단순히 반복할 줄은 알아도, 현존하는 교육 문제의 본원적 성격을 밝혀내려는 노력은 관심 밖의 사항으로 여기는 학생들을 보게 된다.
교과서에서 배운 이론이 교육의 현상을 분석하는 데 기본 틀이 될 수 있으며 또 그래야만 하지만, 실제로는 일반화된 이론을 각기 다른 구체적 상황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점 때문에 누구에게나 교육 현상을 통찰하는 일이 항상 어려운 문제이다. 따라서 자신이 배운 이론을 올바로 써먹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 이론이 자신이 처한 상황을 분석하는 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하고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능력은 문제를 통합적 차원에서 볼 수 있도록 관점을 형성하는 자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는 교육 철학적 관점으로서 문제를 문제로 보도록 하는 능력이다. 그러자면 교육철학은 철학자들의 난해한 이론을 열거하고 설명할 것이 아니라, 인간과 교육 현상을 새로운 시각으로 고찰하며 비판적으로 질문하도록 이끌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한국의 교육학이 자신의 고유한 학문적 정체성에 대해지기는 내용과도 연결되어 있다. 외국의 이론과 경험을 비판 없이 받아들여 우리의 교육에 그대로 적용해 온 교육학적 실험은 이제 더 이 상고가 거의 유로 되풀이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전 세계에 보편적인 교육이론이 존재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이론이 의미하는 바를 자신의 고유한 입장과 상황에서 새롭게 보는 시간이 형성되어 있지 못할 때 우리는 그 이론에 기계적으로 얽매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어찌 보면 한국의 교육학이 교육철학을 너무 좁게 이해하여 교육학자들에게 공통된 보편적 인식 기반으로서의 교육에 대한 철학적 사고를 경시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언어와 사고방식이 전혀 다른 외국의 이론이 한국에 그대로 적용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론적 차원의 합리성이란 물론 인간의 사유를 충만하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학은 실천을 전제로 한 이론적 사유이기 때문에 실천의 현장을 고려하지 않을 경우 이론은 공허하게 될 수 있다. 한국의 언어, 사고방식, 역사·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하여 문제의 본질을 새롭게 파악할 때만 외국의 이론이 우리의 교육 현실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 스스로가 반성적이고 비판적 자세로 교육학 이론의 보편적 측면을 볼 수 있을 때, 우리는 교육의 문제를 주체적으로 파악하고 해결할 수 있는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직수입된 외국의 이론에 견주어 한국의 교육 현실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일은 문제의 진상을 왜곡시키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니 교육 철학적 안목과 자세의 형성은 교육학자와 교육인 모두에게 요구되는 필수적 요소이다.
오늘날처럼 실증과학과 물질주의에 길들어 계량적이고 실리적인 삶을 추구하는 현대인들에게 예전의 철학이 형이상학적 차원의 문제에 관심을 가졌었다는 사실은 상당한 거부감을 주고 있다. 교육철학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러나 단순한 정보의 수집과 획득이 인간의 교육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인간은 단순히 기계적 사유와 작동에 자신을 맡기는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교육철학은 인간이 자신의 내부로 들어가 영혼과 정신의 문제를 깨닫게 하고 그에 근거한 교육학적 사유를, 즉 습관과 관습에서 벗어나 새롭게 대상을 직시하고 그것이 자신에게 주는 의미를 파악하는 태도를 형성시켜야 한다. 교육철학을 배우는 까닭을 우리는 그러한 점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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