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철학의 과제
오늘날 교육학이란 학문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분과학문을 가지고 있다. 가장 기본적이라고 일컫는 분야만 열거해도 교육사, 교육사회학, 교육심리학, 교육과정, 교육행정, 교육공학, 교육상담 등 여럿이며 이들 분야가 다시 분화하여 수없이 많은 세부 영역이 존재한다. 예를 들면 교육 법학, 분과는 교육 현상을 자신들의 특수한 관점에서 고찰하고 이해하려는 경향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이러한 전문화 경향은 교육에 대한 교육학자 공통의 이해 관심과 인식의 폭을 점차 좁혀 가고 있어서 교육학자들 사이에도 전공에 따라 대화의 어려움이 생기게 될 정도가 되었다.
교육학은 18세기말 철학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철학, 심리학, 사회학, 역사학, 신학 등 인접한 학문과 상호교육하면서 성장하였다. 그러한 상호교류는 자연스럽게 교육학의 분과를 형성하였으며 교육학의 학문적 성격과 연구 방법에 상당한 영향을 주게 되었다. 그 결과 교육학은 자체의 고유한 연구 영역이나 연구방법론이 결여된 일종의 보조과학인 양 비치기도 하였으며, 교육학이 진정으로 독립된 학문인지는 오늘날까지도 논의의 대상으로 되어있다. 하지만 교육학적 인식의 궁극적 지향점은 인식 그 자체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실천에 있다는 점에 교육학의 학술적 인식의 특성이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면 교육학적 인식은 선함 그 자체가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데에 있지 않고, 어떻게 하면 선하게 될 수 있는가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교육철학은 다양하게 분화된 교육학의 분과학문이 탐구하여 밝혀내는 모든 세부적 사항의 궁극적 목적, 즉 교육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내용에 관심을 지닌다. 결국 교육학적 탐구의 모든 내용은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개별적 인간이 자신의 고유함을 드러내도록 도야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공존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데 있으며, 교육철학은 그러한 궁극적 목적을 위해 교육학적 사유 전체를 통합적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그렇다고 해서 교육철학이 교육학의 모든 분과영역의 연구 방법과 대상을 공유한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교육학의 다양한 영역에서 산출된 지식의 합 그 자체가 교육철학인 것도 아니다. 교육철학은 교육학의 다른 분야와는 달리 교육학적 지식의 성격과 구조를 파악한 뒤 각기 다양한 세부 분야를 통합하여 조직하려는 인식관심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자면 일부 계층의 음성적 과외라는 파행적 교육 현상을 비판적으로 분석하여 그 해결책을 찾으려는 목적은 어디에 있는 것인가? 이는 아마도 기본권이라고 할 수 있는 교육받을 권리를 누구나 올바로 행사하여 개별적 자가 도야에 이르도록 하자는 데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교육의 궁극적인 의미를 실천하려는 방향으로 파악하여 인식하기 위해서는 교육학의 분과영역들이 각기 제시하는 사유 방식에만 집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어떠한 교육 현상이나 다양한 차원의 인식관심이 서로 복합적으로 교차하여 있음을 전제로 하여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러한 관점에서 문제에 접근하는 학문이 바로 교육철학이다. 따라서 때로는 교육학의 특수한 분과처럼 어느 특정한 사실이나 현상을 세밀히 밝혀내지는 못할지라도 항상 문제의 본질을 교육의 궁극적 의미와 연결하여 파악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교육철학은 교육학적 인식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통합적 관점에서 제시하고 있다.
교육철학은 교육학의 다른 세부 분야와는 방법론적으로 대상에 접근하는 태도가 다르다. 각각의 세부 분야는 나름의 일정한 이론적 방법론을 지니고 있다. 이에 반해 교육철학은 교육학적 인식에는 여러 상이한 차원의 방법론이 관여하고 있음을 전제로 하여 이론을 정립하고 그 실천적 측면을 논의한다. 그러면 예를 들기 위해 교육학적 인식에 관여하는 단지 몇 가지 요인들만을 제시해 본다.
첫째, 교육학적 인식은 경험과학적 요인들을 전제로 한다. 인간 발달의 생물학적 근거나 심리학적 근거들은 경험과학적 방법으로 충실히 연구될 수 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학습이론이나 사회성 발달 이론 등은 대체로 경험 과학적인 연구의 결과들이 모여 형성된 것이다. 따라서 교육학적 인식에 경험과학적 관점은 필수적이다.
둘째, 교육학적 인식은 철학적 ·반성적 사고의 대상이기도 하다. 이점에 대해서 우리는 이미 앞에서 상세히 논의한 바가 있다. 경험과학적 방법은 오로지 그 방법론적 원칙에 의해서만 연구를 계속해 나갈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경험과학적 방법론을 지닌 사람이 자신의 연구방법론 자체에 대해 반성하며 사고하지 않는 한, 그는 그 방법의 한계를 인식할 수 없다. 따라서 교육학적 인식은 문제의 지평 전체를 조망하고 그 궁극적 의미에 대해 반성하며 사고하는 철학적 방법 역시 전제로 해야만 한다.
셋째, 교육학적 인식은 또한 신학적 차원의 문제의식을 전제로 한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종교를 가지고 있다. 지역과 문화권에 따라가기 다른 종교가 발생하였으나, 세계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종교는 인간 삶의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하고 있으며 개인 및 사회적 생활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을 전제로 할 때 자신의 고유한 삶의 의미를 추구하도록 도와주는 교육이 인간의 종교적 차원의 문제를 배제한 채 진행될 수는 없을 것이다.
위에 든 몇 가지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우리가 교육학적 인식을 통합적 관점에서 획득하기 위해서는 인간존재와 삶의 다양한 요인들을 모두 포괄하는 방법론적 태도가 요구된다. 교육철학은 그러한 교육학적 인식의 구조를 밝혀내기 위해 어느 특정한 방법에 귀착된 연구에 의존하지 않는다. 교육철학은 교육의 이론과 실천에 대한 포괄적 관점을 형성할 수 있도록 우리들의 시각을 자유롭게 열어 놓는다. 이러한 점에서 교육철학은 다른 교육학의 세부 영역과는 학문적으로 다른 특징을 지닌다. 교육학을 구성하는 여러 과목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교육의 이론과 실천의 문제 전부를 포괄하는 통합적 관점의 학문이다. 따라서 교육 철학적 인식 관점은 특정한 세부 영역을 전공하는 이론가는 물론이고 교육의 실천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에게 반드시 요구되는 사랑이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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