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적 사유형식과 교육
실재론
실재론(realism)이란 물리적 세계 안에서 사물에 대한 지각이나 경험을 통해 무엇이 궁극적 실체인지를 탐구하는 철학적 사유의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최초의 실재론자인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플라톤에 의해 제시된 정신의 존재론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정신이 참된 실재의 핵심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다. 그는 나무, 돌, 사람과 같은 경이로 누 자연 세계의 사물을 실체로 보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먼저 이러한 사물들이 어떠한 공통성을 지니며 또 그 재료는 어떤 것으로 이루어졌는지 파악하면서 물질(matter)과 형상(form)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그는 이 세상의 모든 사물이 물질이라는 가시적 구성요소와 그 물질의 본질에 의해 결정되는 형상을 지닌다고 생각하였다. 그에 따라 사물의 기본이 되는 물질은 그 안에 내재한 본질적 모습을 구현하기 위한 가능성이 된다.
반면에 물질이 현실성을 지니게 하는 형상은 단순히 사물의 영원한 실재가 아니라, 비 형상화된 물질이 현실성을 지니게 하는 사물 자체의 목적이자 "동력"이기도 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물질이란 어떤 모습(form) 또는 어떤 본체를 갖출 것인지가 결정되지 않을 경우 현실화할 수 없다는 가설을 세웠다. 따라서 우주의 모든 대상, 즉 객관적 철학의 가시적 대상은 잠재성의 원리(principle of potentiality : matter)와 현실화의 원리(Principle of actuality : form)라는 두 원칙을 통해 구체화한다.
예를 들어 우리의 생활에 필수적인 가구로서 목재로 만든 식탁과 의자를 생각하면, 식탁과 의자의 재료인 목재는 물질을 나타내고 식탁과 의자라는 개념은 형상을 나타낸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볼 때 이렇듯 세상의 모든 사물은 물질과 형상으로 결합하여 있다. 그런데 그의 이러한 주장은 관념론자들의 주장과는 상반되는 견해로서, 실체 또는 어떤 사물의 참된 실재란 정신에 내재한 관념의 세계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외부에 있는 물질의 세계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신 밖의 세계야말로 인간이 지각할 수 있는 유일한 실체로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실체라고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우리의 정신 속에 존재하는 관념과 개념은 사물 세계로부터 얻는 감각 자료에 의존하게 된다고 본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된 실재론은 중세와 근대를 거쳐 여러 사상가에게서 발전하였다. 특히 근대와 현대에는 코메니우스(J. A. Comenius), 로크(J. Locke), 헤르바르트(J. F. Herbart), 러셀(B. Russel) 등과 같은 교육사상가들이 실재론에 근거한 교육이론을 전개하였다. 실재론의 계보를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면 고대의 합리적 실재론과 현대의 자연적·과학적 실재론으로 대별된다. 하지만 그 분류와 관계없이 실재론의 관점을 교육학적 측면에서 요약하면, 실재론은 사물의 질서나 체계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며 인간은 그러한 실재로부터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실재에 근거한 지식을 통해 주어진 질서에 일치하는 삶을 영위해야 한다. 현재 각국에서 진행되는 교과 중심 교육과정은 실제로 인간과 사물의 실재에 대한 지식의 체계를 바탕으로 역사, 수학, 과학, 언어, 예술 등과 같이 교과목을 구분하고 있다.
실재론의 교육원리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재론에서 말하는 교육이란 인간이 타고난 본성, 사회적 습관 그리고 정신적 통찰 능력을 최대한으로 개발하여 공동체 안에서 개성 있는 삶을 영위하도록 이끄는 데 그 목적이 있다. 교육은 아동들이 우주의 법칙과 부합되는 올바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자연법칙을 발견하여 그것을 가르치는 일이다. 일반적으로 실재론자들은 학교란 인간의 이성을 개발하는 곳으로 규정하고 교육을 통해 지식의 발견 및 전수 그리고 사용하는 능력을 길러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지식은 인간의 사회적, 정치적, 심미적 영역 등 삶의 모든 측면에서 행동의 가장 확실한 길잡이가 된다는 것이다. 현대의 교육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실재론의 교육원리를 몇 가지로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은 우주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핵심적 지식과 경건한 마음을 갖추도록 하는 일이다. 인간이 접하고 사는 우주의 근본은 자연의 법칙과 체계에 따라 이루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과학적으로 인식하는 일이 바로 교육에서 가장 핵심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을 직접적으로 연구하여 그 법칙을 탐구하는 교육 내용이 강조된다. 실재론자들은 식물학, 동물학, 지학, 화학, 물리학, 천문학 같은 과학적 교과목을 학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실재론은 학생이 자신의 감각경험을 통해 세계의 자연 질서를 지각할 수 있는 유기체적 존재라고 본다. 학생은 고도의 지성을 발휘할 수 있는 자질을 지닌 존재로서 우주와 자연의 법칙을 깨닫고 사회 안에서 덕과 정신적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학생은 자기 스스로를 결정하고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권리를 지닌 개성적 존재로 인식된다.
셋째, 교사는 보편적 지식을 지닌 교육전문가로서 다양한 교수법을 통하여 학생들을 이끌고 교육해야 한다. 교사는 교양 교과 및 과학적 교과 모두에 해박하여 보편적 지식을 지녀야 하는데, 이러한 보편적 지식은 지식체계 각각의 상호관계를 이해하게 하고 인간의 합리성을 함양시킨다. 교수의 목적은 학생들에게 지식의 체계를 제공하는 데 있기 때문에 교사는 지식을 공급하는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넷째, 교육의 목표는 이상적 생활을 영위하게 하는 데 있으므로 자아실현 및 타고난 자연적 본성과 사회성 그리고 이성이 조화된 개성을 추구하는 교육이 요청된다. 따라서 학교는 인간의 자연적 질서와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교육의 궁극적 목적인 "정신적으로 관조하는 삶"을 추구할 수 있도록 이성을 고양해야 한다.
다섯째, 교육은 학생들이 진리를 알고, 사용하는 습관을 길러주는 과정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학문적 기본 훈련이 중요하며 교사의 권위와 주도권이 존중되어야 한다. 교사는 가장 가치 있는 교과 내용을 체계화하여 학생들에게 가르쳐야 하며 학생들이 진리에 대한 예민한 감각을 지니도록 도와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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