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의 역사

제3공화국의 교육

반응형
 

제1.2공화국의 교육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교육미군정기시대의 교육개화기에서 현대까지의 교육 시대적 특징   미군정기 시대는 불과 3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바로 이때 현대 한국 교

soni-history.tistory.com

개화기에서 현대까지의 교육

제3 공화국의 교육(1961-1972)

  1961년 쿠데타를 통해 집권한 군사정부는 "조국의 근대화"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이를 추진하기 위한 작업으로서 교육을 통한 인간 개조 운동을 펴나갔다. 또한 1961년에는 학원의 정상화를 통해 양질의 교육을 실시한다는 명목으로 교육에 관한 임시 특례법을 공포하였는데, 그 내용은 ① 문교부 장관에 대한 학교·학과 통폐합, 학급·학생 자원 재조정 권한 부여, ② 교육감 및 국공립대학교 총학장 임명제, ③ 교수자격 심사제, ④ 교원의 노동운동 금지, ⑤ 학사 자격 국가고시 실시 등이었다. 그러나 이 법은 당시 군사정부에 대해 비판적이었던 교수·대학생 및 대학 당국을 통제하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제정된 것이었던 교수·대학생 및 대학 당국을 통제하려는 정치적 의도에서 제정된 것이었다. 또한 군사정부는 사친회비가 무상 의무교육 정책의 취지에 위배되었다는 점을 들어 사친회를 폐지하였는데, 이는 교육재정 확보가 선행된 조치가 아니었기 때문에 각종 잡부금의 형태로 학부모로부터 필요한 재정을 충당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은 결국 실속이 없는 전시 교육행정의 하나였다. 이밖에 군사정부는 1961년 교육 가치기구인 교육구와 시교육위원회를 폐지하였으며, 1962년에는 교육법을 개정하여 교육행정을 내무행정에 예속되게 함으로써 교육자치제를 완전히 폐지하였다.

 


  1963년부터는 그동안의 군사 정치가 막을 내리고 제3 공화국이 시작되었다. 3 공화국  기간의 괄목할 만한 교육 조치는 1968년의 중학교 무시험 전학제도와 대학입학예비고사 제도 등 입시제도의 개혁을 들 수 있다. 먼저 당시 '7·15 어린이 해방'이라고도 불렸던 중학교 무시험 전 형제는 그동안의 입시경쟁으로 인한 폐해들을 한꺼번에 해소할 수 있는 조치로 인식되어 전폭적인 호응을 얻었다. 당시 문교부가 내세웠던 중학교 입시제도 개혁의 취지는 ①어린이의 정상적 신체 발달 촉진, ②초등학교 교육의 정상화, ③사교육비 부담 경감, ④중학교 간 격차 해소 등이었다. 실제로 중학교 입시제도 철폐 이후 이와 같은 목표들은 어느 정도 달성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반응형


  다음으로 대학입학예비고사 실시는 대학 입학 자격자를 국가가 선발하고 이들을 다시 각 대학에서 시험을 통해 선발한다는 것이었다. 이 조치에 대해서는 반대 여론이 들끓었었는데, 대학들은 이 조치가 학생 선발과 관련한 대학의 고유 권한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리고 일선 고등학교나 학부모들은 이것이 이중의 입시라는 점을 들어 반대하였다. 그러나 이 제도는 그동안 부분적인 손질만 있었을 뿐 그 골격은 크게 바뀌지 않은 채 지금까지 지속되어 왔다. 특히 "대학입학학력고사", "대학수학능력시험" 등으로 명칭이 변경되면서 점차 대학입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증대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제3공화국 기간에 교육 조치로서는 교육자치제 부활을 명시한 교육법 제정이다. 그러나 교육법 부칙에 지방자치제가 실시되기 전까지는 교육감과 교육의원을 대통령이 임명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실질적으로 교육자치제는 종전과 달라진 것이 없었다.

 

제4공화국의 교육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교육미군정기시대의 교육개화기에서 현대까지의 교육 시대적 특징   미군정기 시대는 불과 3년밖에 안 되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바로 이때 현대 한국 교

soni-history.tistory.com

 

 

반응형

'교육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5공화국의 역사  (0) 2024.10.16
제4공화국의 교육  (0) 2024.10.16
제1.2공화국의 교육  (0) 2024.10.16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의 교육  (0) 2024.10.16
미군정시대 교육 읽기  (0) 2024.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