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사회학/이론가들

그람시

반응형
 

쿨리

알튀세르현대교육의 전망서양 현대의 교육계몽주의시대의 교육코메니우스의 교육사상아우구스티누스소크라테스고대의 교육2024.10.15 - [교육의 역사] -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의 교육 읽기 서

soni-history.tistory.com

 

 

  그람시는 1892년 이탈리아 사르데냐섬의 알레그라는 조그만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람시의 사상이 춤 발은 그의 가정환경에서부터 살펴볼 수 있을 듯하다. 그의 아버지는 국회의원 선거에서 낙선한 후보의 선거 운동을 하다가 정치적 보복을 당해 투옥을 당한다. 그래서 이 사건 전까지의 비교적 안정된 생활은 끝이 나고 가계는 급격히 기운다. 이때부터 그람시는 가난의 설움을 뼈저리게 겪으면서, 특히 소학교를 우수한 성격으로 졸업하고도 중학교로 진학하지 못하였다는 울분에 그에게는 '반역의 본능'이 생기기 위해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아버지의 출감 이후에도 생활 형편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고 중, 고등학교 생활 동안의 계속된 고학은 그를 고독하게 만들었고 그는 그 고독한 시간을 사회주의 사상의 책들을 탐독하면서 보냈다고 한다. 즉 결과적으로는 이러한 가난의 경험이 그가 자연스럽게 사회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게 만든 첫 번째 계기가 되었다고 보인다.

  그 사상의 또 다른 출발점은 바로 그의 태생지인 사르데냐섬에 관련된 것이다. 당시 사르데냐섬 경제력의 가장 중요한 원천은 농, 축산물 수출은 큰 타격을 입게 되었고, 이에 따라 사르데냐의 경제력은 급속도로 추락한다. 이러한 농민들의 불만은 체계적인 조직을 통한 저항의 형태로 승화되지 못하고 양의 탈이나 방화 폭동 등과 같은 범죄 내지 반란의 형태로 승화되지 못하고 약탈이나 방화 폭동 등과 같은 범죄 내지 반란의 형태로 나타났고 이에 따라 사르데냐섬 전체는 무척 혼란스러웠다. 그러던 것이 섬 북부 광산 지대에서 카 발레라는 한 지식인이 광부들 사이에 사회주의 사상을 보급하였고, 이 결과 광산노동조합이 생겨났으며 이어 잇따라 과업도 일어났다. 그리고 이 파업의 폭력적인 진압 과정에서 몇 광부들이 목숨을 잃었고 이를 계기로 노동조합은 보다 공고해진다.

  제1차 세계대전을 전후하여 이탈리아의 프롤레타리아트는 가혹한 착취와 억압 때문에 극도로 피폐한 생존조건을 영위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들은 사회주의 혁명을 거부하고 심지어 파시즘 운동에 적극적으로 호응하여 무솔리니의 정치적 억압을 환영하는 기이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혁명적인 대중운동이 실패하게 되었고, 그럼 사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혁명론의 현실적 한계를 실감하게 되었으며, 마르크스주의 국가이론이 재구성되어야 할 필요가 있음을 깨달았다. 그는 부르주아 국가체제가 지배계급의 이익과 피지배계급으로부터 능동적인 동의와 적극적인 지지를 확보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이것은 새로운 사회혁명의 전략적 논리로서 헤게모니의 개념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다.

  당시 이탈리아 노동자 운동을 지도했던 것은 이탈리아 사회당(PSI)이었는데, 이들은 정치투쟁을 책임지는 것은 자신들이고, 노동조합은 경제투쟁에만 전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람시는 이러한 사회당의 노선이 밑에서 올라오는 노동자 대중의 혁명적 열기를 담아내는 데 치명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고 보았다. 국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치와 경제를 구분하는 이분법이 지지가 되기 힘들다고 본 것이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제시된 것이 공장평의회라는 조직이었다.

그람시 사상의 개념들
  • 헤게모니
"헤게모니의 정상적인 행사는 강제력과 동의의 조합으로 특징지어진다."

  이는 헤게모니의 행사는 단순히 동의에 의한 것뿐만 아니라 강제력이 수반되는 것으로서 강제력과 동의의 변증법적 통합 작용에 의해 총체적으로 파악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다. 바꾸어 말하면 동의를 궁극적으로 보장하는 실체는 국가의 강제력으로서 동의와 강제력은 독립적으로 사고될 수 없는 것이다.


  즉, 헤게모니란 경제력이나 물리적인 폭력에 근거한 지배만이 아니라, 이러한 지배에 더하여 피지배자의 동의에 기초한 지적 도덕적 지도력을 가리킨다. 헤게모니 적 지도력은 한 국가 내의 모든 주요한 집단으로부터 지적, 도덕적, 철학적 동의를 발전시키는 과정을 수반한다. 이 과정은 감정적인 차원도 수반한다. 바꾸어 말하면, 헤게모니 적 지도력을 추구하는 정치 지도자들은 이 감정의 차원에서 민족·민중들의 감정에 호소해야 하고 대중들과 유리된 낯설거나 생소한 사람으로 보여서는 안 된다.

 

  그람시는 정치 지도자들이 실행하려는 정책들을 민중이 완전하게 이해하고 그들에게 동의하는 것에 관심을 가졌다. 혁명 전에 지도자들과 대중들 사이에 호혜적인 상호 협조의 과 예를 수립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논했다. 왜냐하면 그런 상호 협조의 관계를 이루지 못하면 어떤 혁명이든지 간에 혁명 후에는 정부와 민중 사이의 관계와 독재적인 것이 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그람시가 발전시킨 헤게모니의 개념은 부분적으로는 그람시가 마르크스주의라고 부른 실천의 철학에 대해 모든 비 착취계급에 속하는 사람들이 동의해야 한다는 뜻하였으며, 그 동의는 당 엘리트들이 조작해 내고 강요하는 과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교육과 이해의 결과여야 한다고 했다.

  헤게모니가 성공적으로 이룩되었을 때는, 일상적인 정치적 문화적 경제적 생활에서 이를 감지해 낼 수 없다. 그러나 만약 국가나 경제에서 세력을 잡지 못한 일부 집단들이 변화를 원한다면, 그 집단들은 헤게모니의 투쟁에 참여해야 할 것이다. 헤게모니를 위한 투쟁은 주로 직접적인 행동들이나 협소한 경제적·조합주의적인 행동들이 아니라 대중매체와 교육에서의 도덕적 철학적 논의들로 시작될 것이다.

  한편 지배계급의 헤게모니 적 통치가 실패하는 경우가 일어날 수 있는데, 그람시는 이를 헤게모니의 위기라고 표현한다. 헤게모니의 위기는 지배계급의 착취구조가 가혹해질 때, 그리고 피지배계급 자기의식의 고양 등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 이때 그람시는 이와 같은 위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적절한 대응책이 제시되지 않아 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의심받고, 도전받는 상황, 즉 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공백으로 인해 통치 질서가 파열됨을 설명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 내에서 정치 변혁의 요인을 경제적인 요인들의 모순으로부터 찾는 방법과는 다소 다른 입장을 보여준다.

 

 

  • 국가와 시민사회

  헤게모니의 개념은 그람시 이론 중 가장 중요한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그람시 정치사상의 중심 개념이면서 궁극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발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게 만든 키워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람시의 또 다른 개념인 '시민사회'의 전세가 필요하다. 시민사회란 국가의 관장하에 있는 공적 기구의 영역에서 벗어나는 사적이면서 자발적인 사회적 관계 예컨대 상업조합, 정당, 교회, 미디어, 문화조직 등을 일컫는 것이다.

  그람시는 부르주아 지배의 권력작용은 강제력과 동의의 조합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보았다. 이때 국가는 정치사회와 같은 의미로 대중을 통제하는 독재나 강제 기구의 영역으로서 강제력이 행사되는 장소지만, 시민사회는 교회, 노동조합, 학교 등과 같은 사적 조직으로서 동의를 통한 헤게모니가 행사되는 영역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어디까지나 방법론적인 구분일 뿐, 실제에 있어서 국가의 시민사회 영역, 강제력과 동의의 지배 양식의 행사는 부르주아 지배 질서 속에서 통일적으로 인식된다.

"국가는 단지 외곽에 둘러쳐진 외포에 지나지 않으며 그 뒤에는 요새와 토루의 강력한 체계가 버티고 있었다."

 

  위 인용문에서 알 수 있듯이, 시민사회가 매우 복합적인 구조로 형성되어 있는 서구 상황에서는 입법, 사법, 행정의 국가기구들을 주축으로 한 정치사회의 구조란 일종의 상부 구조적 외피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외피의 이면에는 각종의 정당, 이익단체, 학교, 교회 등 기타 이데올로기적, 문화적 조직체들로 구성된 시민사회의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시민사회가 정치권력의 지평에서의 투쟁에 대한 완충 막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시민사회는 국가체계의 외부에 존재하는 모든 제도, 기제 달리 표현하면 경제와 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매개적인 상부구조이다. 그리고 국가와 시민사회의 개념상 속에서 양자는 개방적 공간으로 설정된다. 즉 국가와 시민사회가 상부구조 내에서 분리되어 있으면서 동시에 결합하여 있는 방식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이다. 국가와는 구별되는 시민사회라는 개념을 통해 그람시는 레닌, 트로츠키가 주변적인 요인으로만 사고했던 헤게모니에 의한 지배가 자본주의적 지배의 독특한 기제라는 점을 인식하게 된다.


  그람시가 지칭하는 시민사회는 단순히 교회, 언론매체, 정당, 노조 등의 사적 장치들이 활동하는 영역으로 이해하는 경우 그람시의 시민사회 개념이 담고 있는 독특한 요소를 놓치기 쉽다. 시민사회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와는 달리 제도, 기구의 총체로 환원될 수 없으며 제도, 기구 등의 형식적 틀이 담고 있는 이데올로기, 관습, 일상 의식 등을 포함하는 포괄적인 범주라고 할 수 있다. 즉 알튀세르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 또는 사적 장치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가 헤게모니를 일방적으로 관철하는 영역으로 보았지만, 그람시는 시민사회가 헤게모니를 구축하기 위한 투쟁이 벌어지는 역동적인 영역으로 보았다.

  그람시는 지배계급이 다른 계급이 통제하기 위해 무력뿐만 아니라 자발적 동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폭력은 국가의 경찰과 군대에 의해 행사되는 데 반해서, 자발적 동의는 정치적, 도덕적, 지적인 리더십을 통해 얻어지는 것으로 규정한다. 헤게모니는, 그렇다면 국가적 리더십을 행사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국가적 리더십이 시민들의 자발적 동의를 바탕으로 이뤄지도록 일종의 연합(역사적 블록)을 추구하는 것이 헤게모니를 성취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헤게모니를 행사하는 계급이란 다른 세력들과 연합체제를 만들어 시민들로부터 자발적인 동의를 부여받아 국가적 리더십을 확보했을 때 가능한 개념이다. 그만큼 시민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볼 수 있다. 이는 러시아 혁명을 가능케 했던 조건과 대비되는 서구의 입장을 감안한 이론이다. 국가가 전권을 휘두르던 러시아 사회와 달리, 자본주의가 발달한 서구 사회는 시민사회가 훨씬 더 복잡하게 발전되었다는 것이다.

 

반응형

 

  • 진지전

그렇다면, 시민사회가 개입되어 있는 서구 자본사회에서 행할 수 있는 사회변동의 전략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이 그림자의 생각이다. 러시아처럼 전면전을 통한 혁명이 아니라, 서구에서는 게릴라전을 통해 승부를 결정짓는 진지전을 기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시민사회의 변화를 통해서만 국가의 변동을 기할 수 있다는 말이다. 예컨대 서구에서 노동운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자본계급의 헤게모니에 대항해서 그 자체의 연합전선을 구축한 다음 시민사회에서 자본계급과는 다른 대안적인 헤게모니를 구축해야만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전쟁에서는 격렬한 포격으로 적의 모든 방어체계가 파괴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단지 외곽 주변만이 파괴된 것에 지나지 않아, 아군 돌격병들이 나아가 공격할 때 여전히 유효한 적의 방어선에서 저지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곤 한다."

"러시아에서는 국가가 모든 것이었고 시민사회는 아직 원시적이고 무정형적인 것이었지만, 서구에서는 국가와 시민사회 사이에 적절한 관계가 형성되었고, 국가가 동요할 때에는 당장에 시민사회의 견고한 구조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국가는 단지 외곽에 둘러쳐진 외호에 지나지 않으며 그 뒤에는 요새와 토루의 강력한 체계가 버티고 있었다."

 

  위의 인용문은 일시에 적의 지배권을 공격하는 기동 전으로는 더 이상 부르주아 국가를 붕괴시킬 수 없는 현실을 말하고 있다. 부르주아 국가는 이미 곳곳에 참호(시민사회)를 구축하여 위기 상황에서는 시민사회가 강력한 요새나 보루로서 작용하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기구를 전복하는 것만이 그 사회에 대한 완전한 통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대체하여 피지배계급의 헤게모니가 확립되기 이전에는 그 사회에 대한 완전한 지배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람시는 진지전을 수행하기 위한 네 가지 사항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첫째, 각 국가나 사회가 놓여 있는 특성을 개별화하여 개별성을 중시해야 한다. 특히 트로츠키식의 영구혁명론적인 단일세계주의의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둘째, 부르주아 헤게모니에 저항할 수 있는 노동자 계급의 조직과 그들의 대항문화를 체계적으로 형성하여 부르주아 헤게모니를 이론적 차원에서 포위해야 한다. 셋째, 대항헤게모니가 지배적인 것으로 구축되면 피지배계급의 역사적 블록이 조직되는데, 이를 통해 사회혁명의 과정으로 진입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사회혁명의 공격목표는 국가기구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체 사회적인 것으로 확산시켜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혁명적이고 전위적인 프롤레타리아 정당은 철저한 이데올로기적 무장과 철의 규칙으로 그 권위를 확립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그람시가 구상한 혁명정·당은 국가권력의 장악을 위해 가동되는 저 투기구 라기보다는 '진지전'의 일부로서 시민사회 내에서 이데올로기적·교육학적 기능을 수행하도록 고안된 '집합적 지성'이다.

 

 

  • 수동혁명

  수동혁명 개념은 피지배계급의 자기 해방을 위한 전략으로서가 아니라, 선진 사회주의 사회의 형태 변화를 ㅂ 다시 게임하고, 국가에 대한 전면적 공격을 가로막고 있는 정치적, 경제적 장애들을 해명해 주기 위해 제시된 개념이다. 서구의 부르주아 국가는 기존의 봉건적 지배계급과는 다른 지배 방식을 보여준다. 우선 기존의 지배계급은 본질적으로 보수적이었는데, 이는 의도적으로 자기 개혁을 하려고 노력하려 하기보다는 총과 칼에 의한 폭압적 강제력의 행사를 통해 체제를 유지했던 반면 발전한 서구의 부르주아 국가는 여타의 계급들을 자기 계급에 유기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하려는 노력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이는 오늘날의 부르주아 국가가 헤게모니를 주요 수단으로 하여 여타의 계급을 지배한다는 사실과 의도적인 자기 개혁의 필요성이 필요성을 의미한다.

  그람시에게 국가는 헤게모니를 장악하고 있는 집단의 통치구조라고 생각되었다. 따라서 국가는 헤게모니의 작동을 통해 지배계급의 권력을 확대하기 위한 도구이면서, 피지배계급을 미조직 상태로 묶어둘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국가는 새로운 지배 논리를 창출하고 그것을 더 높은 단계로 합리화시키는 기능의 수행자로서 이러한 기능을 수행함으로써 국가는 지배계급의 헤게모니를 점점 더 강화하게 된다. 이때 헤게모니의 지속적 유지를 위한 피지배계급의 동의가 요구된다. 따라서 국가는 피지배계급이 자발적으로 추수할 수 있는 사회구조를 조성하는 데 치중하게 된다. 특히 기존의 지배 이데올로기나, 헤게모니는 계급투쟁이 진전됨에 따라, 또는 생산관계가 변함에 따라 시대에 뒤진 것이 되어버려 그 수용도가 약해지게 된다. 그렇게 되면 지배계급은 그러한 상황을 극복하고 지속해서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하여 자신의 이데올로기나 헤게모니, 권력구조를 부분적으로 수정하기 위하여 자신의 이데올로기나 헤게모니, 권력구조로 부분적으로 유지하고, 피지배계급의 도전을 배제하기 위하여 국가권력의 개혁적 조직화를 추구하는 행위를 수동혁명이라 한다.

  수동혁명은 대항 세력들의 혁명적 잠재력을 제거함으로써 그들의 적대적인 반 헤게모니 적 행위를 차단하게 된다. 그러나 수동혁명은 피지배계급에 의한 본질적인 사회혁명을 미연에 막기 위한 부분적인 개혁이기 때문에 개량주의적 성격을 가지게 된다. 따라서 수동혁명은 아래로부터의 요구 중에서 지배체제의 붕괴를 요구하는 것을 제외한 많은 것들을 수용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계급투쟁을 경제주의적인 노동조합 단위의 투쟁에만 국한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수동혁명의 구체적인 예로 1987년의 6-29 선언을 들 수 있다. 당시 혁명적으로 끓어오르던 대중투쟁의 열기는 당시 민정당 대표였던 노태우가 대통령 직선제 선언을 함으로써 일거에 사그라들고 말아도. 이렇듯 수동혁명은 지배계급이 피지배 계급의 혁명적 잠재력을 제거하고 자신들의 지배를 공고히 하기 위해 수행하는 자기 개혁이다.

  수동혁명은 단지 정치영역 또는 상부구조의 영역에서만 수행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구체적인 생산관계의 변혁 과정 속에서도 구현되는데, 이는 미국주의 와 포드주의에 대한 논의에 잘 나타나 있다. 그람시는 선진 미국의 경제체제를 수동혁명으로 제 구조화된 새로운 자본주의의 단계로서 규정한다. 미국은 1929년의 공황이라는 위기를 포디즘을 도입함으로써 극복하였는데, 포디즘은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맞는 여러 형태의 저항에서 비롯되어 도입된 생산 체제이다.

 

 

  • 그람시의 교육사사

◈헤게모니와 학교 교육

  그람시는 계급지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강압적인 힘이 아니라 전체사회에 대한 지적 도덕적 지배를 이데올로기적으로 흡수할 수 있는 힘으로 보았다. 지배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대중들의 이데올로기적인 합의가 필요하다고 보며, 힘에 의한 지배가 아니라 동의에 의한 지배의 바탕에 따른 지적 도덕적 영향력 또는 지도력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이를 헤게모니 개념이라 한다.

  헤게모니는 지배 피지배 계급의 능동적인 동의를 얻는 것을 가능하게 하는 이론적 실제적 행위의 총체적 복합체로서 피지배 계급에 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방식과 관련 있다. 즉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 방식은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힘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물리적 힘에 의존하지 않고도 사회체제의 질서유지 존속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기존의 이데올로기 질서들이 사회 전 영역에 지배계급의 가치관을 확산시켜 타 계급에 받아들여지면 이들의 권력은 합리적인 것이 되기 때문에 더 이상 강제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여기에 교육의 중요성이 드러나는데 이러한 이데올로기를 대중들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수행하는 장치이다. 그람시에게 있어서 교육의 중요성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급지배의 방식을 파악함으로써 사회변혁을 위한 대항 이데올로기를 창출하는 프롤레타리아 지식인을 길러내는 것이다.

  그람시에 의하면 교육의 목적은 비판의식을 함양하는 것이며 인간을 인간다운 존재로 만든다는 것이다. 교육은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한 이데올로기적 활동이며 모순된 현실을 지각하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의지를 고양하는 활동이다. 이는 전통적인 교육 목적(인간을 기존사회에 적응시키는 것을 강조하고 새로운 지식 또한 기존의 사회질서 체제를 발전시키는 것을 강조하고 새로운 지식 또한 기존의 사회질서 체제를 발전시키는 맥락)과는 다른 것으로 부르주아 지배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파악 치킨으로써 의식의 각성을 통하여 비판적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학교는 시민사회 영역에 속하는 대표적인 헤게모니 기구이며, 개인이 속한 계급적 위치에 따라 계급구조를 영속화할 때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그리고 학교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와 역사와 부정적인 측면은 가르치지 않는다. 이 또한 헤게모니 기관이기 대문이며 지배 이데올로기의 정당성을 주입하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차별적 학교사회화는 지양되어야 하며 사회 전 영역의 학문이 누구나 동일하게 제공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사회계급과 관계없이 문화적 지적 경제적 정치적 능력이 고루 계발되어야 하며, 모든 사람이 동등한 교육의 기회를 가져야 하고, 집단적 재정 부담은 교육받을 능력이 있는 사람 그러한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보았다. 또한 나이와 관계없이 학습하는 평생교육 체제를 주장한다.

 

 

가방이 크다고 해서 공부 잘하는 것 아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데 중요한 영어·외국어·역사·정치·고전·예술·기타 학문의 교수·학습상에도 결함이 있음을 인정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계획 및 프로그램 개발은

soni-history.tistory.com

 

 

반응형

'교육사회학 > 이론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켈스  (0) 2024.11.14
후설  (0) 2024.11.13
프레이리  (0) 2024.11.12
뒤르껨의 사회학 방법론과 교육사상  (0) 2024.11.11
뒤르껨  (0) 2024.11.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