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mund Husserl
후설의 생애와 사상적 배경
후설(Edmund Husserl)은 베르그송과 같은 해인 1859년 모라 비에서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1886년 프로테스탄트로 개종했다. 1887년에서 1901년까지 할레 대학에서 사상사를 맡았으며, 1901년에서 1916년까지는 괴팅겐 대학에서 가르치고 연구했다. 그 후 1928년까지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정교수로 재직했으며, 1928년까지 프라이부르크 대학에서 정교수로 재직했으며, 1938년 79세의 나이로 운명했다. 나치즘의 등장으로 고난을 겪었으며 쓸쓸하게 운명했다. 후설 사유의 목적은 학문의 토대를 닦고 그를 통해 유럽을 구제하려 한 것이었다.
서구 철학의 역사에서 본질과 외관(appearance)의 이분법은 중요한 위치를 점해 왔다. 이때 '외관'이란 가변적이고 감각적인 존재들로서 참되지 못한 존재들이라는 뉘앙스를 품는다.
서구 근대 철학에서 외관은 '현상(agenomenon)'으로 변하며 나름의 의미를 함축하는 존재로 화한다. 그러나 칸트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듯이, 현상은 오로지 주체의 구성을 기다리는 수동적이고 비자율적인 존재로 그쳤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서의 질료·형상이라는 도식이 칸트에 이르러 인식 질료와 아프리오리란 형식들이라는 도식으로 바뀐다.
콩트는 '현상'이라는 말에 자율적인 존재론적 위상을 부여했다. 현상은 구성되는 것이 아니라 발견되는 것이며, 그 자체 'positivit'(실증성 부여했다. (이런 생각은 브렌타노를 거쳐 후설로 이어진다).
현상을 적극적으로 이해한다는 철학적(존재론적, 인식론적)사유는 곧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인생을 적극적으로 이해한다는 가치론적, 윤리학적 사유와 맞물려 있다. 따라서 철학은 현실 세계를 넘어서는 형이상학적 사유를 맞물려 있다. 따라서 철학은 현실 세계를 넘어서는 형이상학적 사유를 추구하기보다는 현실 세계 자체에 대한 탐구에 경도된다. 이런 맥락에서 신체, 의미, 습관, 감정, 불안, 죽음, ···등등의 주제들이 이전보다 더 적극적으로 사유가 되기 위해 시작한다.
이런 경향은 '실증성'에 대한 공통의 믿음을 깔고 있음에도 콩트에서 유래해 논리, 실증주의와 공리주의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는 서구 주류 사회의 철학과는 다른 계열을 형성한다. 즉, 이때의 '실증성'은 과학적 탐구의 전제가 되는 '감각 자료(sense data)'의 의미가 아니라 인간이 인생을 살아가는 가장 원초적인 모습 즉 '생(Leben)', '실존(existence)'의 의미가 된다. 따라서 같이 경험적, 실증적 태도에서 출발하지만, 콩트 이후의 실증주의 계열과 메는 등 비랑 이후의 반성철학 계열은 전혀 다른- 나아가 대립적인 -길을 걸어간다.
현대적 의미에서의 반성철학(la philosopher flexive)은 고 중세의 형이상학이나 근대의 과학적 철학이 아닌 제3의 길을 걸어간다. 이 계열은 메는 등 비랑 이 데카르트의 'cogito'에 자신의 'vol'을 맞세우면서 시작되었으며, 이후 딜타이, 니체 등의 '생 철학(Lebensphilosophie)', 라 배송, 라슐리에, 부 트루 등의 '정신주의(spiritualism)', 네 동셀 등의 '인격주의(personalism)', 야스퍼스, 사르트르, 마르셀 등의 '실존주의(existentialism)' 등으로 발전해 갔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에서 후설과 메를로-퐁티, 레비나스 등의 현상학, 하이데거, 가다머, 리쾨르 등의 해석학이 방법론적으로 중요한 기여를 하게 된다. 물론 지금 열거한 사조들, 인물들 사이에도 많은 차이들이 존재하지만, 전체적으로 보아 이 반성철학 계열이 실증주의 계열 및 사회주의 계열과 더불어 서구 근현대 사유를 삼분했다고 할 수 있다.
19세기에 개별적이고 산발적으로 진행되던 반성철학- 그 핵심 흐름은 메는 등 비랑 이후의 '정신주의'와 쇼펜하우어, 키르케고르, 니체, 딜타이 등의 '생 철학'이다(물론 이런 일반화가 곤란한 맥락이 많다)-는 20세기에 들어와 하나의 전기를 맞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이 반성 철학적 사유에 뚜렷하나 방법론적 구도를 제공한 '현상학(phenomenologie)'의 등장이다. 현상학의 등장으로 반성철학은 보다 엄밀한 인식론적 도구를 가지게 된다. 후설은 그 자신은 생철학기나 실존주의와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인물이었지만, 현상학이라는 방법의 창시를 통해서 이런 흐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된다.
후설은 철학을 '엄밀한 학'으로 만들고자 했으며, 그 실마리--아르키메데스의 점--로서 인간의 의식을 탐구했다. 이 점에서 그는 데카르트와 칸트의 기를 잇고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상학이란 현상의 로고스(phenomeno-loge)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본래 현상과 로고스는 대립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후설은 현실-본질의 이분법을 거부하고 현상 자체를 두 차원-본질적인 차원과 비본질적인 차원, 즉 선험적 차원과 경험적 차원-으로 나누어본다. 그래서 로고스를 자기는 현상을 탐구한다.
로고스를 가진 현상을 탐구한다는 것은 곧 현상의 '의미'를 탐구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현상의 의미는 의식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며, 따라서 후설에서 의미를 탐구한다는 것은 곧 의식의 활동 내용을 탐구한다는 뜻이다.
후설의 현상학
<현상학의 특징>
현상학은 오스트리아 태생 독일의 철학자 에트문트 후설의 슬로건인 '사상(事象) 자체로'의 동조하는 사조를 총괄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슬로건은 구체적으로 경험하는 현상에 대한 아주 새로운 접근법, 즉 가능한 한 개념적 전제를 벗어던지고 그 현상을 충실히 기술하려는 시도를 의미한다. 더욱이 현상학의 지지자들은 대부분 경험 또는 상상으로 얻어진 구체적 사례를 머릿속에서 체계적으로 변형하면서 면밀히 연구하면 이 현상의 본질적 구조와 관계를 통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 몇몇 현상학자들은 현상이 인간의 대상 지향적 의식 속에서 나타나는 방식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한편 현상의 이런 정태적 측면을 넘어 그 발생적 측면, 예컨대 어떤 책이라는 지향된 현상이 어떻게 경험 속에서 '구성'되는지를 연구하려는 현상학자들도 있다. 후설도 이런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이 현상이 실재한다는 믿음을 잠정적으로 보류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끝으로 실존적 현상학은 예컨대 불안과 같은 특정 현상의 의미를 특수한 '해석학적' 현상학을 통해 탐구한다.
<다른 사조와의 비교>
실증주의와 전통적 경험론과 비교해서 현상학은 경험의 실증적 자료를 무조건 존중한다는 검에서는 똑같지만 자료를 감각경험에 제한하지 않고 관계·가치 등 비 감각적·범주적 자료도 직관적으로 나타나는 것인 한 허용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현상학은 보편 자를 거부하지 않는다. 현상학은 주어가 술어를 논리적으로 함축하고 진리 치가 경험에 의존하지 않는 선천적 분석명제(예를 들면 '모든 물체는 연장을 가진다')와 주어가 술어를 논리적으로 함축하고 진리 치가 경험에 의존하는 후천적 종합명제(예를 들면 '내 옷은 빨갛다')를 인정할 뿐 아니라, 주어가 술어를 논리적으로 함축하지 않고 진리 치가 경험에 의존하지 않으며 경험적으로 주어진 것들 사이의 본질적 관계에 대한 통찰을 바탕으로 한 선천적 종합명제(예를 들면 '모든 색은 연장을 가진다')도 인정한다.
현상론과 달리 현상학은 우선 인식론이 아니고 현상과 실재를 엄격하게 구분하며, 현상(감각 또는 감각 가능성)만이 존재할 뿐이라는 좁은 견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현상학의 관점에서 보면 현상론은 경험을 포기하더라도 개념적 추론을 강조하는 합리론과 달리 현상학을 개념과 모든 선천적 주장이 직관에 기초하고 직관으로 검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컴의 면도날' 원리를 적용하여 직접적으로 주어진 것을 변형하고 재해석하는 데 반대하고 그 자체로 분석하려 한다. 언어철학처럼 현상학도 일상언어의 의미로 주어진 현상들 사이의 구분을 존중하지만 분석이 현상을 연구하는 충분한 토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일상언어는 현상의 복잡성을 완전히 드러낼 수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인간 존재는 객관화할 수 없는 것을 객관화하려 하기 때문에 현상학적 분석과 기술에 부적합하다고 보는 실존철학과 달리 현상학은 인간이 비록 조심해야 하지만 이런 현상을 다룰 수 있고 다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현상학의 보급>
후설의 연구에 뒤이어 현상학은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프랑스에서는 실존주의의 대표주자인 장 폴 사르트르가 후설과 하이데거의 철학을 출발점으로 삼았으며, 그의 초기 저작들인 (1943)에서 사르트르는 하이데거의 주장을 끌어들였지만 현존재 분석에서 벗어났다. 이 책의 핵심 주장은 즉자존재(卽自存在)와 대자존재(對自存在)의 구분이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즉자존재는 항상 똑같은 불투명한 실체이며 대자존재는 무가 침투한 의식이다. 사르트르는 인간을 자신에 관한 선택 속에서 자신을 찾거나 잃는 가능 존재로 정의했으며, 인간의 기본 특징이 자유라고 주장했다. (1960) 등 후기 저작에서 사르트르는 마르크스주의에 의존해 개인의 선택이 사회 조건과 심리 조건의 제한을 받는다고 주장했다.
사르트르와 함께 프랑스 실존주의의 대표자인 메를로 퐁티는 매우 중요한 프랑스 현상학자이기도 했다. 메를로 퐁티는 현상학의 관점에서 인간 신체의 의미와 인간의 공간지각·자연 세계·자유 등도 새롭게 해석했다. 독일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상학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어났으며, 이에 중요하게 기여한 사람은 쾰른의 루트비히 란트그레베였다. 미국에서 현상학은 후설의 제자인 만번 파보가 (1943)이라는 잡지를 창간했음에도 불구하고 별로 관심을 끌지 못했다. 그러나 근래 두 학자의 연구로 주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오스트리아 태생의 사회학자 알프레트 스위치는 현상학을 바탕으로 사회과학을 발달시켰으며, 리투아니아 태생의 철학자 아론 그루 비치는 수학·자연과학·심리학·형이상학 그의 해 반항 지식을 바탕으로 현상학에 대한 글을 남겼다. 현상학은 수학·생물학·심리학 등 철학 이외의 분야에서도 현상학적 경향을 북돋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특히 정신병리학 분야에 크게 기여했으며 독일의 뛰어난 실존주의자 차를 야스퍼스는 환자의 주관적 경험을 실존주의적 정신의학에도 뚜렷한 흔적을 남겼으며, 사회학·역사학·종교학·교육학 등에도 큰 영향을 끼쳤다.
'교육사회학 > 이론가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하임 (0) | 2024.11.15 |
---|---|
인켈스 (0) | 2024.11.14 |
그람시 (0) | 2024.11.13 |
프레이리 (0) | 2024.11.12 |
뒤르껨의 사회학 방법론과 교육사상 (0) | 2024.11.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