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화기에서 현대까지의 교육
전통 시대부터 지금까지 우리의 교육사에서 변함이 없었던 것은 지배층의 경우 교육을 자신들이 추구하는 목적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왔다는 점일 것이다. 예를 들어 조선시대의 경우 국민 교화의 수단으로써, 구한말에는 부국강병의 수단으로써, 일제와 미군정 시대에서는 한국민에 대한 통치 수단으로, 그리고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지금까지는 각 정권의 이해관계를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교육은 이용되어 왔다.
특히 정부수립 이후 역대 정권들이 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왔음은 입시제도 개혁의 역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우선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69년의 중학교 무시험제도 실시가 그러하다. 당시 이 조치는 박정희 대통령의 3회 연속 출마를 관철하려는 소위 "3선 개헌"을 달성하기 위해 국민들의 환심을 사려는 의도에서 이뤄진 것이었으며, 실제로 이것은 어느 정도 효과를 얻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1973년의 고교평준화 시책 역시 같은 시각에서 볼 수 있다. 주지하는 바처럼 이 시책은 유신정권 출범 직후인 1973년 초에 마련된 것인데, 이는 당시 유신체제에 대한 국민들의 반감을 누그러뜨리기 위한 조치로 해석된다. 이와 함께 제5 공화국의 대학 본고사 폐지 및 대학 입학정원 확대 조치를 담은 7·30 교육개혁 역시 정권의 부당성에 대한 국민들의 저항 의식을 희석하려는 방편의 하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입시제도 개혁을 정치적 전략 차원에서 실시할 경우에는 당연히 그 내실 성에 있어서 문제를 지닐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것은 이러한 입시정책이 단기간에 만들어지면서 전문가 집단이나 이해 관련 집단의 의견 수렴 절차를 거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그 전형적인 예가 앞서 살핀 1973년의 고교평준화 시책과 5 공화국의 7·30 교육개혁안이다.
또 한 가지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교육개혁 담당 집단의 역량 부족에 관한 것이다. 이것은 특히 사교육 대처방안에서 드러난다. 흔히 이들은 사교육의 만연이 사교육비를 증가시킴으로써 사회문제를 야기할 뿐만 아니라 학교 교육에 대한 불신을 초래하는 원인이 된다고 보고 사교육을 근절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펴게 된다. 그리고 이들이 늘 하는 주장은 "학교 교육의 정상화"와 "입시제도 개혁"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역대 정부가 공통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열된 사교육을 완화하기 위한 대책으로서의 "학교 교육의 정상화"는 과연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가? 이 점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하지 닿을 수 없다. 왜냐하면 사교육에 의지하려는 경향이 학교 교육의 비정상화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학교에서 교육을 잘하건 그렇지 않고 간에 학생 및 학부모들의 입장에서는 동일한 조건으로 비치기 때문에, 아무리 학교 교육을 정상화한다고 하더라고 사교육에 집착하는 현상은 크게 달라질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해법의 단서는 가장 기본적인 물음을 통해 모색해야 한다. 그 물음이란 학생이나 학부모들이 왜 교육에 매달리느냐 하는 것이다. 그 대답이 "대학입시"라고 하는 데 대해서는 이론이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어떤 대학에 들어가느냐 하는 것은 한 개인의 일생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학력(學歷) 간 임금 격차가 엄존하고, 학력으로써 그 개인의 학식과 인격을 가능해지려는 풍조가 보편화되어 있다. 그래서 무리하는 한이 있더라도 대학에, 그것도 일류대학에 진학하려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대학입시제도의 특징이란 곧 하나의 기준에 따라 줄 세우는 방식이기 때문에, 대학 진학은 "석차 경쟁"이라는 인식을 심어 줄 수밖에 없게 된다. 이것은 결국 학생들에게 강한 경쟁의식을 부추김으로써 동일한 조건으로 인식되는 학교 교육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게 함으로써 결국 사교육에 매달리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이처럼 대학입시는 사교육을 매개로 하여 학생들 간에 과열 경쟁 구도를 조성하게 됨을 알 수 있다.
기실 사교육의 범람은 여러 복잡한 원인에 기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최소한 앞서 언급한 바처럼 학교 교육의 부실이 주된 원인이라고는 볼 수 없다. 따라서 사교육 완화 방법으로서 그동안 역대 정부의 교육개혁에서 강조해 왔던 "학교 교육의 정상화"라는 처방은 문제의 본질을 제대로 읽지 못한 것이다. 사교육의 완화를 위해서는 입시제도 개혁 쪽에 치중할 필요가 있다. 입시제도 개혁의 방향은 무엇보다도 획일적 기준의 적용을 지양하고 대학에 대해 학생 선발에 있어서 완전한 자율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사교육 완화를 위한 또 다른 방법은 정부가 학력 간 임금 격차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이다. 최소한 이것만 해결되더라도 학력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이렇게 되면 종전처럼 사교육에 대한 과도한 집착 현상은 상당히 누그러질 수 있으리라 판단된다.
한편 획일화된 입시제도의 폐해는 사교육의 범람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주지하는 바처럼 지금까지와 같은 획일적 입시 제도하에서는 객관성, 공정성이 핵심이 되기 때문에 입시 문제 출제 방식에 있어서 선다형이나 단답형이 주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일선 학교의 교육은 주입식 또는 암기 위주로 흐르게 되고, 여기서 종합적 사고력이나 도덕성 함양과 같은 측면은 도외시될 수밖에 없었다. 이 접을 개선하기 위해 본고사에서 논술시험을 부과하는 대학들이 있기는 하나 범 대한 적으로 실시되는 것이 아니므로 그다지 큰 기대를 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획일적 입시제도는 지방교육자 치제에도 걸림돌이 된다. 교육자치제의 기본 취지는 교육 행정적인 면에서 중앙으로부터의 통제를 배제한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교육자치제의 궁극적인 의의는 각 지방마다의 특성을 반영한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획일적인 입시 제도하에서는 지방마다의 독창적인 교육과정 운영이 쉽지 않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교육 수요자인 학생·학부모의 반발이 클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획일화된 입시제도가 교육의 정상화를 저해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이것은 특히 최근 일선 학교에서의 "열린 교육" 운영 방식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현행 "제6차 교육과정"에서는 "열린 수업방식"을 권장하고 있다. "열린 수업"은 종전처럼 교사가 일방적으로 교육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학생들을 피동적인 존재로 만들었던 관행에서 벗어나, 학생들에 의한 자발적인 수업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을 주된 목표로 하는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이 "열린 수업"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학생들 개개인의 수준에 맞춘 수업이다. 그리하여 일선 학교에서는 능력별·조별 학습식·자발적 수업이 권장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교실에서는 이와는 거리가 먼 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자발적 학습이 시행되고 있지 않다고 하는 것은 대부분 교실에서의 책상 배치가 종전처럼 분단 유형별 종렬 방식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 잘 보여 준다. 일부 학교에서는 조별 수업을 위한 책상 배치를 하는 곳도 있기는 하나 실제로 토론식 수업이 이루어지고 있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 이유는 학생이나 교사 모두가 이런 방식에 익숙지 않은 것도 있겠으나, 보다 중요한 이유는 입시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책상 배치는 토론용으로, 실제 수업은 강의식으로 되는 것이 지금 우리 교육의 현실이다. 이것은 앞서 살핀 것처럼 50년 전 미군정시대의 교실 모습과 비교할 때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
뿐만 아니라 능력별 학습도 이루어지기가 어렵다. 특히 중등학교의 경우 입시가 교육의 목표가 되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수업의 수준이 전략상 상위권 학생들에게 맞추려 하기 때문에, 학생 개개인의 수준에 따른 '능력별 수업'은 이루어지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처럼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은 바로 획일적인 입시제도임이 자명하다. 그런데 지금까지 역대 정권들의 교육개혁에서 입시제도에 대한 대응 방식을 보면 대체로 일관성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간의 입시제도 개편 과정을 단순화시켜 보면, 과당경쟁→사회정치 문제화→개편→새 문에 발생→악순환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는 그동안 역대 정권들이 획일적 입시제도를 고수해 왔음을 보여 준다. 이것은 곧 그들이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한 의지도 해결 능력도 모두 부족했음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이와 함께 입시제도의 혁신을 가로막는 요인이 또 있다. 획일적인 입시제도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정서가 국민들에게 보편화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들 사이에는 획일적 선발 방식이 다소의 부작용이 있을지라도 입시의 생명이라고 여겨지는 객관성과 공정성을 확실히 담보할 수 있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는 곧 지금과 같은 입시제도가 "필요악"으로 인식되고 있음을 보여 준다. 결국 그동안 획일적 입시제도는 국민들에 의해 떠 받혀져 온 셈이라고도 볼 수 있다. 이것은 입시제도 개혁, 나아가서 학교 교육의 정상화를 추진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민들의 의식변화를 꾀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임을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