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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교육사인가?
오늘날 우리는 교사로서의 직업생활을 하는 데 교육사가 필요한 것은 아니며, 별로 재미도 없는 교육사 과목을 공부해야 한다는 것은 시간 낭비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것은 아마도 교육은 가르치는 일이고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가르칠 내용으로서의 최신 지식과 그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과 기술이 중요한 문제이지, 케케묵은 교육사의 내용은 현대의 교육에 큰 보탬이 되지 못한다는 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교육의 역사에 대한 지식은 없어도 교사로서 맡은바 교육적 책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인지는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문제이다. 왜냐하면 교육이란 지금 당장 사는 데 필요한 실용적 지식을 전수하는 데에서 끝나는 작업이 아니라, 정신과 문화의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자신의 고유한 정신세계를 구축하면서 존재하는 의미와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삶을 영위하게 하는 예지와 판단력을 길러 주는 것을 전제로 하는 힘들고 보람 있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현대의 기술문명 사회에서 생활이 물질적 측면에서 점점 더 풍요롭고 편리해질수록 인간의 존엄한 정신보다는 물질적 욕구 충족을 위한 다양한 능력개발을 교육으로 잘못 이해한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다시 말해 교육은 물질생활에 필요한 지적·기술적 능력을 개발하는 일 이상의 작업이어야 한다는 비판이다. 그렇다면 교육에 대한 이러한 비판적 인식은 어떻게 생겨날 수 있는 것인가? 이러한 인식은 교육이 단순히 정해진 지식 내용을 그대로 전수하는 데 머무르지 않고, 인가나 스스로가 자신이 하는 일 그 자체를 종합적이고 포괄적인 안목으로 고찰하고 인식하도록 이끌기 때문에 생길 수 있는 것이다. 역사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끊임없이 형성되어 가는 자기 자신을 깨닫게 되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역사성에 대한 인식이요 이러한 역사성의 인식은 역사를 배움으로써 비로소 눈 들게 된다.
교육의 이해 자체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역사에 대한 인식에서 나오는 것처럼, 교육적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 역시 교육에 대한 폭넓은 안목을 형성해야 가능할 것이다. 그리고 교육을 보는 이러한 비판적 인식과 안목은 무엇보다도 교육사에 관한 공부를 통해서 형성될 수 있다. 여기서 역사를 배움으로써 현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은 단순히 현재에 대한 지식의 폭을 넓힌다는 뜻이 아니라, 현재와 미래의 결단과 행위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다는 의이다. 따라서 교육에 대한 역사의식을 갖춘 교사는 같은 내용을 전달하더라도 자신의 역사적 관점을 통해 나타나는 교육에 대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한 교육적 판단과 더불어 그 내용을 더 생생하고 의미 있게 전달할 수 있다. 이 경우 그는 단순히 기능적인 교수-학습의 차원에서 벗어나 미래의 삶과 인류사회에 생동적 지식을 전달할 수 있는 교수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그는 역사의 흐름에서 어느 특정한 한 시점에 고착되어 단순히 일시적 기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역사 전체를 조망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전제로 한 지식과 가치를 다루는 교사의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듯 교육사의 효용성은 교육에서 인간의 존엄성과 존재 의미를 미래지향적으로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는 데 있다.
자연 그 자체에는 역사가 없다. 역사는 인간이 지닌 역사의식의 산물이다. 따라서 자연의 인과법칙과 질서는 오로지 인간의 역사적 시각이 함께 할 때만 역사적으로 될 수 있다. 인간은 발생한 사건을 이야기하고 또 그 원인을 탐구하여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역사를 만든다. 역사는 역사의식에 의해 확인되고 풍성해진다. 우리가 교육의 역사를 연구하는 까닭은 과거의 교육이 어떠했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교육사는 역사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일정한 시각으로 과거의 사실을 보게 한다. 과거의 교육적 사실을 단순히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 가운데 어떤 것을 교육의 역사로 보도록 안목을 형성시키는 데에 교육사를 배우는 의미가 있다. 그에 따라 교육사의 교육목적은 다음과 같이 몇 가지 점에서 요약될 수 있다.
첫째는 성장 세대가 선인들의 교육적 예지를 배우도록 한다는 것이다. 교육사는 인류가 오랜 세월을 걸쳐 겪어온 교육 경험 및 사상을 역사적 관점에서 정리한 예지의 집합체이다. 우리가 조상들이 이루어 놓은 교육문화와 예지를 전제로 하지 않고 교육한다고 할 경우, 무한한 시행착오와 좌절을 겪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축적되어 내려온 시행착오와 좌절을 겪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수천 년 동안 축적되어 내려온 교육적 경험과 지혜를 충분히 알고 이용할 때만 한정된 시간을 사는 인간은 현재의 삶과 미래를 위한 교육을 올바로 계획하고 실행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교육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교육적 지혜의 원천일 수밖에 없다.
둘째는 주어진 교육 현실을 본질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교육사를 교육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와의 연결점을 단절시킨 채 현재의 교육 현실을 논의할 경우 문제의 원인이 어디에 있으며 그 해결책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 당황하게 된다. 우리가 현재의 교육 현실의 단면을 제아무리 경험적으로 정밀하게 분석하여 진단한다고 할지라도 객관화된 기술과 지식만이 기계적으로 정밀하게 분석하여 진단한다고 할지라도 객관화된 기술과 지식만이 기계적으로 다루어질 수는 없을 것이며, 설혹 그렇게 될 경우에도 전통적 가치와 의미가 반영되어 진행되는 교육이 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을 것이다. 교육 현실이란 자연현상처럼 객관적 사실의 나열과 진행이 아니라, 가치와 의미를 창출하는 인간의 정신활동이기 때문에 역사적 관점에서 고찰하지 않으면 그 본질이 드러날 수 없다.
셋째는 앞에서도 비슷한 맥락에서 언급했듯이 교육 현실을 비판하고 미래 사회로의 발전을 위해 교육사 교육이 요구된다. 흔히 "교육은 희망"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희망이란 현재의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이상을 향해서 추구하는 상태를 의미하는 것이다. 문화체계 속의 다른 영역들, 즉 정치나 경제 역시 미래를 지향한다고는 하지만 문화의 미래지향이란 근본적으로 교육을 통해서만 가능할 수 있다. 미래의 정치나 경제란 항상 아직 도래하지 않은 이상적 상태를 희망하고 추구할 수 있도록 인간의 정신이 각성할 때만, 그리고 그러한 상태를 위해 미리 익히고 준비할 때만 가능한 것으로 교육적인 조처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불가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따라서 교육사는 미래의 교육을 준비하도록 자극하고 격려하는 학문으로 이해될 수 있다.
넷째는 국민의 역사관과 국제이해를 도모하기 위해서 교육사가 요구된다. 우리는 교육사를 통해 교육이 한 나라의 시대적 변화와 발전을 위해 어떻게 대처해 왔는지를 알 수 있다. 각국의 역사가 주로 정치적 측면의 변화와 발전을 야기한 사건들을 중심으로 하여 서술된다면, 교육사는 문화사의 일종으로서 정치, 경제, 사회의 변화 속에서 각각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삶을 준비하던 과정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교육의 역사적 상황을 서술하는 데에는 당시의 사회적 삶을 주도하던 정신과 가치가 드러나게 되는데, 이러한 측면은 국민의 역사관을 형성하는 데에 기여할 수 있다. 또한 외국이나 다른 문화권의 교육사를 통해서는 다른 민족과 사회를 이해할 수 있는 문화·교육적 안목이 생기게 되는데, 특히 그러한 점은 인간 정신의 보편성을 전제로 한 문화의 특수성을 깨닫게 하여 역사를 배우는 사람이 한 국가의 국민인 동시에 세계인으로서의 자기 이해를 형성시킬 수 있도록 한다. 오늘날처럼 열린 세계에서 각 국민들이 상호교류하면서 생활하여야 하는 상황에서 외국의 교육사를 배우는 일은 서로의 문화적 특수성을 이해하고 공감하도록 이끄는 데에 기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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