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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사회학

아인슈타인이 다닌 학교

교육토리 2024. 11. 11.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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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방이 크다고 해서 공부 잘하는 것 아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데 중요한 영어·외국어·역사·정치·고전·예술·기타 학문의 교수·학습상에도 결함이 있음을 인정한다. 이러한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계획 및 프로그램 개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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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인슈타인은 독일 뮌헨에서 고등학교에 다녔다. 하지만 권위주의적인 교육방식을 견디지 못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아인슈타인은 졸업증서를 받지 못한 채 15살에 학교를 자퇴한다. 결국 그는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만 것이다.

  그 후 1년 가까이 아인슈타인은 북부 이탈리아를 여행했다. 약 100년 전에 괴테가 그랬듯이 이탈리아 태양과 풍광은 이 젋은이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주었으며, 뮌헨 학교 시절 괴로웠던 일들을 잊어버리게 해 주었다. 그해 여름에 아인슈타인은 처음으로 과학 에세이를 써서 고모부인 카이사르 모후에게 보냈다. 이 에세이는 아인슈타인이 최신 전자장 이론 연구 주제에 상당히 정통해 있었음을 보여 주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에세이에서 무슨 천재성이 보였던 것은 아니고, 어려운 주제를 풀어내는 데 필요한 인내심과 자기 훈련 등이 이 에세이를 쓴 사람이 앞으로 대가가 될 가능성이 있음을 암시해 줄 뿐이었다.

 


  아인슈타인은 독학자였다. 고등학교를 중퇴하기 전에 아인슈타인은 부모에게 약속한 대로 스위스에 있는 스위스 연방 공과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했다. 그러나 외국어, 생물학, ,역사학 과목에서 낙제함으로써 그 대학 입학시험에서 떨어지고 만다. 이들 과목에 합격하려면 아인슈타인이 뮌헨에서 학교를 그 문 두도록 만들었던 형태의 학습이 필요했다. 즉, 지루한 기계적 암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워낙 수학과 물리학 점수만은 뛰어났기 때문에 이를 안타까이 여긴 그 대학의 한 아인슈타인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입학시험에서 낙제점을 받은 과목을 보충하기 위해 스위스 아이로(Aarau) 주에 있는 한 예비학교에 들어갔다. 아인슈타인은 이 예비학교가 전혀 격식을 중시하지 않으며, 또 교사 권위에 의지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엄숙함을 유지하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이 학교는 시각적으로 사유하는 능력을 강조했는데, 아인슈타인은 시각적인 사유 방법에 아주 매료된다. 이것이 나중에 특수상대성 이론의 싹이 되었음을 나중에 깨닫게 된다.

 


  그의 재능은 이러한 예비학교의 교육 분위기에서 한껏 신장하고, 학급에서 최우등상을 받고 마침내 스위스 연방 공과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는다. 그러나 그가 들어간 대학에서 본 시각적 사유의 역할은 별반 중시하지 않았으며, 응용 중심의 낡아빠진 물리학 커리큘럼 중심의 강의 위주였다. 아인슈타인은 대학의 이 과목을 좋아하지도, 또 그가 보기에 전혀 중요하지도 않은 주제를 그토록 엄청난 노력을 기울며 욀 생각도 없었다. 그래서 틈 있을 때마다 루트비히 볼츠만, 헤르만 헬름홀츠와 같은 당대 이론 물리학 대가를 섭렵했다. 이들에게서 아인슈타인은 학교에서 배울 수 없는 물리학과 함께 과학이론을 만드는 데에 시각적 사유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독자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대학 생활에서 배운 것은 아니라고 회고한다. 스위스 연방 공과대학에서 얻은 그의 최종 평균 학점은 6점 만점에 4.91로 우수한 편이긴 하지만, 아주 탁월하다고는 할 수 없다. 아인슈타인의 창조적 사유에서는 시각적 이미지가 핵심적인 기능을 하는데, 이 시각적 이미지란 독일의 문화 과학적 환경에서 사용되는 직관(Anschauung)과 같은 말로 번역되며, 원래 이 용어는 칸트 철학에서 유래된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보기에 창조적 사유는 본질적으로 비언어적인 것이며, 어떤 현상에 대해서 자기도 모르게 경이로움을 느끼게 되는 데서 비롯된다고 설명한다. 구체적으로, 아인슈타인은 다섯 살인가 여섯 살 때 나침반을 보고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이 잡고 있는 듯이 가운데 바늘이 한 점에 고정된 것을 보고 경이로움을 느꼈다고 회상하고 있다. 후에, 자신이 발견한 강자론에서도 그는 광자(光子)를 경이로운 것이라고 부른 것 중 하나로 여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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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러한 아인슈타인의 시각적 사유 또는 직관은 전통적인 학교 교육만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100여년 전 아인슈타인이 다녔던 한 예비학교가 아인슈타인에게 창조적 능력을 더욱 북돋아 준 것이다. 아무튼, 옛날에도 그런 학교가 존재함으로써 오늘날 인류는 번영하게 되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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