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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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의 역사

조선시대의 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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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교육 읽기

삼국시대∽고려시대    흔히 각 시대마다의 교육을 살필 때는 가장 먼저 그 틀, 다시 말해서 학교 제도가 어떻게 짜여 있는지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이는 한 시대의 그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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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적 특징

 

14세기 중엽 원(元)의 세력이 점차 약해져 가자 원의 간섭으로부터 독립하고 원이 차지했던 옛 영토를 탈환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공민왕은 새로이 도입된 성리학(주자학)으로 무장된 신흥 사대부들과 힘을 합하여 원 세력과 결탁해 있었던 대토지 소유의 구 귀족과 대결하였다. 그 후 원 세력을 한반도에서 몰아내는 데 성공한 공민왕은 관학과 과거제도를 통해 신진세력을 양성·등용함으로써 구 귀족들을 지속해서 견제하려 하였다.
  그러나 신흥 사대부들은 과거시험을 거쳐 어렵게 관직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의 재정 악화로 인해 녹봉조차 받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들 사대부는 국가의 재정 악화로 인해 녹봉조차 받지 못하는 실정이었다. 이들 사대부는 그 원인을 구 귀족이 국가 토지의 대부분을 장악하였기 때문으로 판단했다. 그들은 구 귀족들의 사상적 기반인 불교를 공격하기 위해 불교를 배척하는 이론이 들어 있었던 성리학을 신봉하게 되었다.
  그 후 이성계의 위화도회군을 계기로 정권 장악에 성공한 신흥 사대부 집단은 그들이 신봉하는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하는 새로운 국가건설에 매진하였다. 그들이 선봉 하는 성리학을 통치 이념으로 하는 새로운 국가건설에 매진하였다. 그들은 숭유억불 통치하면서 국가의 모든 문물제도를 성리학 이념에 따라 정비하였는데 학교 제도의 강화 역시 이런 맥락에서 이루어졌다. 특히 그들은 고려시대에서처럼 유학을 단지 통치 기술의 차원이 아니라 백성들의 생활 원리로까지 심화하도록 애썼다.

 

 


  한편 조선 건국의 핵심 세력이었던 신흥 사대부들은 평소에 유학 공부에 힘쓰면서 관리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했던 집단이었다. 특히 당시에는 관리가 되는 것 외에는 달리 출세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관리가 되기 위해 거쳐야 하는 관문인 과거가 중시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인해 조선시대 교육에서는 과거 공부가 차지하는 비중이 가장 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거 공부는 사대부(양반)들의 전유물이었다고 할 만큼 다른 신분 집단에는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이런 점에서 조선시대의 교육 수요자들의 핵심은 바로 양반이었다고 할 수 있다.

 

성리학과 교육

 

  조선시대 교육은 그 이념적 바탕을 성리학에 두고 있었다. 따라서 당시 교육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성리학과 그것이 담고 있는 교육철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유학의 한 계보인 성리학(性理學)은 중국 송대(宋代)에 성립된 것으로서 주자학, 송학, 도학, 이학, 정주학 등의 여러 명칭으로도 불린다. 종전의 유학이 실천적·윤리적인 측면을 강조했던 것에 비해 성리학은 다른 유학들에 비해서 이론적·철학적이 성격이 강하며, 특히 인간의 본성이나 우주의 원리와 같은 형이상학적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진다.

  성리학은 이(理)와 기(氣)를 핵심 개념으로 하는 사상이다. 성리학의 교육철학 역시 이기론에 기초하고 있다. 따라서 조선시대의 교육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와 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성리학에서는 우주에 이와 기란 요소가 존재한다고 본다. 먼저 기란 생명과 활동의 근원이며, 모든 사물을 이루는 데 필요한 질료·재료의 개념이다. ㅈ 그 기가 응축됨으로써 사물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생성되는 사물은 그 자체로는 어떤 지향성을 내포하고 있지 않다. 다시 말해서 선을 지향한다거나 악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첫째는 왜 기가 응집되어 사물이 형성되는가? 둘째는 만약 기가 사물로 전환됨에 있어 올바른 쪽으로 지향성이 없다면 세계는 혼란으로 빠지게 되는 것이 아닌가?
  이러한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 주는 것이 바로이다. 이(理)는 바로 기가 응축되어 사물이 되는 이유요, 그 사물이 궁극적으로는 옳은 것을 지향하게 되는 근본 이치이다. 따라서 이(理)는 우주 삼라만상의 기본 법칙으로 마땅히 모든 사물이 따라야 할 길인 것이다. 그런데 이와 기는 항상 떨어뜨려 놓을 수 없는 일제(一體)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는 기의 무방향성으로 인한 우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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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은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활동이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이기론에 기초한 성리학의 인간관을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성리학에서는 모든 만물이 그러하듯이 인간 역시 반드시 이와 기에 의해 탄생하며, 이렇게 이와 기를 받아서 탄생한 인간은 특정한 심성(心性)을 지니게 된다고 본다. 여기서 다시 심성은 이(理)에 근거한 본연의 성(본연지성: 本然之性)과 기로부터 나오는 기질의 성(기질지성: 氣質之性)의 총화로 보고 있다. 그런데 항상 본연의 성은 순선무구(純善無垢) 한 것으로서 누구에게나 보편적으로 내재해 있으며, 기질의 성은 사람마다 차이가 있어 순수함과 탁함, 곧음과 편벽됨, 선함과 악함 등으로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기질의 성이 본연의 성을 가림으로써 그것이 발현되는 것을 막을 수도 있다는 점이며, 도 그 발현 정도에 따라 인간의 종류가 구분된다는 점이다. 따라서 기질의 성에 구애받지 않고 본연의 성을 완전히 구현하는 사람은 성인(聖人)이라 할 수 있고, 성인의 반대쪽에는 소인(小人)이 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런 측면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즉 아무리 소인이라 할지라도 노력을 통해 좋지 않을 기질의 성을 극복하고 본연의 성을 회복할 경우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노력이란 스스로 배우려고 노력(학:學)과 외부로부터 가르침(교:敎)이다. 이것이 바로 성리학에 내포되어 있는 교육의 가능성이자 필요성인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볼 때 본연의 성을 구현하는 성인들은 극소수이기 때문에 대부분은 교육해야 하는  사람들인 셈이다. 성리학의 특징이 교육철학으로 수렴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성리학적 교육철학의 특징은 인간과 자연·우주의 움직임을 성실함 그 자체로 인식하였다. 천체의 운행, 사계절의 순환과 같이 지금까지 한 번도 오류가 없어 왔던 자연·우주의 질서는 바로 인간이 본받아야 할 길로 받아들여졌다.. 이처럼 자연·우주의 운행 질서와 인간의 행동이 하나로 된 상태가 바로 성리학의 궁극적 목적이었다. 그런데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우주처럼 성실함 그 자체(성자:誠者)는 오직 성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고, 나머지 인간들은 그와 같이 되도록 노력해야만 하는 존재들을 보았다. 따라서 대부분의 인간은 성실해지려고 노력해야만 하는 존재들로 보았다. 따라서 대부분의 인간은 성실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성지자:誠之者)을 삶의 기본자세로 삼아야 하며 이런 자세가 바로 인간의 길(인지도:人之道)로 여겨졌다. 또한 성실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은 스스로 깨닫고 배우며 그것을 실천하려는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곧 교육이고 다라서 교육 없이는 인간의 길도 모색할 수 없다고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성리학적 교육철학의 핵심이었다.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성리학자로 여겨지는 퇴계 이 황과 율도고 이 이가 주목할 만한 교육사상가였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들의 교육사상은 곧 앞서 언급한 성리학적 교육철학 체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것을 더욱 정교화하고 심화시킨 결과이다. 체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면서 그것을 더욱 정교화하고 심화시킨 결과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여타의 성리학자들 역시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의 교육사상의 기본골격은 먼저 유교적 이상사회를 상정하고, 이를 위해 인간을 어떻게 기를 것인가를 논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그들의 관심은 인간의 마음에 관한 논의인 심성론에 치중되어 있다. 그 이유는 교육이란 결국 올바른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라고 할 때, 그 방법적 원리를 모색하는 데는 결국 인간 마음의 본질이 무엇이고 이것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가를 알아내는 것이 관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리학 역시 기존의 다른 유학들과 마찬가지로 윤리 규범의 실천을 중시하였다. 차이점이 있다면 성리학은 왜 그것을 지켜야 하는가에 대한 이론적·철학적 근거를 확고하게 마련해 놓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성리학에서 인륜 실천의 당위성을 더욱더 강조하고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여기서 인륜을 실천하도록 한다는 것은 바로 "교화(敎化)"를 의미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교화는 성리학을 포함한 모든 유교 사상의 지상 과제였다. 그중에서도 성리학은 교화의 철학적·이론적 근거를 가장 강력하게 제시한 유교 사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교화란 한 마디로 유교적 지식이나 규범을 내면화하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쉽게 말해서 모든 사람이 제 분수대로 자신의 도리를 다하게 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예를 들면 임금과 신하, 부모와 자식, 남편과 아내, 어른과 아이가 각각 제 분수를 지키게 하는 것, 즉 안분(安分)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특히 자기의 분수에 넘치는 행위를 한다는 것은 천리(天理)에 어긋나는 일로 여겨졌기 때문에, 분수를 지키도록 이끄는 교화는 하나의 소명으로서 인식되었다.
  그렇다면 교화의 주체와 대상은 누구인가? 교화의 주체는 완벽한 인간이라 할 수 있는 성인(聖人) 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교화의 대상이 되는 셈이다. 이처럼 교화의 대상은 무차별적인 것으로서 모든 사람이 그 대상이 되었다. 따라서 교화를 마치 지배층이 피지배층에게 지배 이념을 주입함으로써 그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방편인 것으로 받아들일 때는 교화의 본질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게 된다. 당시 교화는 모든 사람의 염원이었다. 인간의 도리를 제대로 알고 실천한다는 것은 인간이 짐승과 구별되는 기본조건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이유에서 교화의 기회에 접근하기 어려운 일반서민들은 불쌍한 존재로 여겨졌으며, 이들을 교화시킬 때 애민(愛民) 또는 위민(爲民)의 차원에서 이루어졌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또한 조선시대의 교육을 이해하는 데에 알아야 할 것은 상고주의(尙古主義)이다. 상고주의란 유학을 신봉하는 사람들에게 보편화되어 있었던 경향으로서 고대를 흠모하여 현재에 재현시키려는 사상을 말한다. 여기서 고대란 중국의 하·은·주·삼대(三代)를 의미하는데, 이 삼대 모든 문물제도가 완비되어 있었던 이상사회로 여겨졌다. 따라서 유교 이념을 지향했던 조선시대에 있어서 이 삼대의 교육제도는 하나의 모범이자 규범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이러한 삼대 교육제도를 본받아 학교 제도를 완비하려 하였으며, 또한 이것은 삼대의 학교 틀을 벗어나지 않았을 때 정당화될 수 있었다.

 

조선시대의 학교교육 1

앞서 언급한 바처럼 조선시대에 국왕을 포함한 위정자들의 지상과제는 바로 교화였다. 교화의 달성은 곧 이상적 유교 국가의 완성이라는 의미와 함께 국가 안위의 보장이라는 이중적 의미를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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