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개화기에서 현대까지의 교육
시대적 배경
조선은 근 500년간은 별다른 체제 동요 없이 국가를 유지해 왔다. 이처럼 오랜 기간 동안 체제 유지가 가능했던 것은 성리학(주자학)적 질서 체제가 그만큼 공고했었기 때문으로 생각할 수 있으며, 이와 아울러 그동안 조선을 둘러싼 국제질서에 큰 변동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도 중요한 이유로 지적할 수 있다.
조선왕조의 변화는 바로 이 두 가지 요인의 변동으로부터 초래되었다. 조선조 말기에는 실학사상의 대두, 농민반란, 서학(천주교)의 전래 등으로 성리학적 기강이 현저하게 해이해졌으며, 구미 자본주의 열강이 그들의 상품 판매를 위한 시장과 원료 공급지를 확보하기 위해 아시아에 진출함으로써 이 일대 질서에 커다란 변동이 일어나게 됐다. 특히 후자는 조선이 구태를 벗고 새롭게 변신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각자의 계기를 제공했다.
19세기 후반 무력을 앞세워 중국과 일본으로부터 통상조약을 얻어낸 서구 열강들은 이번에는 그 시선을 조선으로 돌리게 되었다. 그들은 종전과 같은 방법으로 조선의 개방을 요구하였으나 조선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자 프랑스와 미국은 강화도를 침략하는 등 그들의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한편 이러한 일련의 사태에 직면한 조선은 그동안의 통상수교거부정책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깨닫고 문호 개방을 추진하였다. 그리하여 외국의 문물제도를 배우기 위해 사절단을 파견하고 국가기구를 개편하는 등 빠른 행보를 보이게 되었다. 특히 이와 같은 개혁에 대한 조선의 의지는 1894년 국가의 근대화를 지향하기 위한 대수술인 갑오개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한국 근대교육 체제는 바로 이러한 국가 근대화 과정과 궤를 같이하여 형성되었다. 특히 국가의 부강은 교육의 혁신에 달려 있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정부뿐만이 아니라 민간 차원에서도 근대식 학교 설립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근대학교 설립은 곧 새로운 역사에 직면하여 여기에 기독교 전파를 위해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선교사들에 의해서도 상당수 세워졌다. 이처럼 구한말의 근대학교 설립은 정부·민간인·선교사의 세 집단이 주축이 되어 추진되었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교육의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시대 교육 읽기 (0) | 2024.10.14 |
---|---|
일제하의 교육 (0) | 2024.10.14 |
박제가의 교육개혁론 (0) | 2024.10.11 |
이 익의 교육개혁론 (0) | 2024.10.02 |
유형원의 교육개혁론 (0) | 2024.10.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