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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고대와 중세의 교육
키케로(Cicero, B.C. 106-43)
키케로(Cicero, B.C. 106-43)는 어려서부터 철학, 법률학, 수사학 등 일체를 포괄하는 교육을 받았다. 그는 법률가, 웅변가, 정치가, 교육가로서 명성을 떨쳤다. 키케로의 교육에 관한 견해가 담겨 있는 《웅변가론(De Orator)》은 로마 최초의 교육 이론서로 알려져 있다.
- 로마교육의 그리스화
로마교육이 보다 체계적인 형태를 갖추게 되면서 다양한 교과에 대한 포괄적인 관심은 사라지고 문학과 수사학이 학교 교육에서 압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으며, 모든 관심이 웅변술에 집중되었다. 로마교육이 이러한 방향으로 흐르도록 하는 데 주동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키케로였다.
키케로는 로마의 고유한 특성과 그리스 정신을 융합함으로써 로마교육을 그리스화 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는 그리스인의 교육적 이상을 수용했고, 수사학과 철학 교과를 옹호하였다.
- 웅변가 교육
키케로는 기원전 55년경에 저술한 《웅변가론》에서 교육의 본질에 관한 자신의 견해와 로마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였다. 그는 로마교육의 실제에 대해 지지하거나 반대하는 주장들을 논의함으로써 교육의 최종목적을 웅변가로서 규정지었다.
키케로는 교육의 문제를 교육자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대중 계몽가의 입장에서 보는 일반교양인의 관점을 취하였다. 그는 로마의 정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웅변 교육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였으며, 설명과 시범을 통하여 웅변의 이론과 기술을 발전시키는 데에 노력하였다. 그는 철학과 웅변을 서로 적대관계에 있는 활동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교육받은 사람이 되려면 누구나 철학과 웅변을 모두 갖추어야 한다고 확신하였다. 그에게 있어서 "진정한 웅변가는 바로 철학자"였던 것이다. 키케로는 웅변가에게서 인간성 일반의 최고상태를 보았다.
- 교육사적 의미
키케로가 제시한 웅변가는 박학과 윤리적 인격의 발달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키케로는 이것을 후마니타스(humanitas)라고 불렀다. 여기서 키케로에 의해 인문주의적 교육 이상이 처음으로 명확하게 파악되고 정립되었음을 볼 수 있다. 그는 사실적인 인식과 의견(신념)을 소홀히 하는 순수하게 형식적인 교육을 거부하였다. 그는 웅변가를 위해서 전인교육, 진정한 국가-정치적인 신념, 포괄적인 사물에 대한 지식, 내적인 문화와 철학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결국 그는 헬레니즘 시대에 나란히 성장한 웅변술적인 교육 이상과 철학적 교육 이상의 통합을 추구하였다.